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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중국인의 일본 유학 연구
A Study on the Chinese Study-Abroad in Japan in the Late Period of Qing(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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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1호 (2017.10)바로가기
  • 페이지
    pp.275-304
  • 저자
    김보림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1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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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Chinese students studying abroad in Japan in the late period of Qing(淸) played the important role on the introduction of western knowledge and skills. The 13 young students towards Japan in the late Qing were dispatched in 1896. The first dispatched students including 13 young students made a role to set up the modern Chinese like Japan fast. They pursued the first to take an accelerated education in Japan. The Chinese policy of study-abroad had been changed according to the circumstance like the war between Qing and Japan or Qing and Russia. But the basic idea of the policy was to make a high quality students. The first phase is between 1896 and 1906 when the number of students studying abroad were increasing and the government activity about dispatching students to foreign countries were very aggressive. The second phase is the period that there were restriction of the dispatching students to other countries by the rule. Chinese students were despised by the Japanese, but when political reforms took place in China, they came back to study with interest. The remained students studied more and harder and made a big role in the Republic of China later as intellectuals. In conclusion, the studying abroad policy were supported or restricted through the internal response about the foreign country civilization.
한국어
청말 일본에서 공부한 중국 유학생은 서양의 문화와 기술을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3명의 학생들이 1896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이래 중국 중심의 역사관이 깨지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중국의 유학생들은 근대 중국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 그들은 처음에는 속성교육이라는 단기간 기술을 배우는 교육에 집중하였다. 중국의 유학생 정책은 청과 일본과의 관계, 또는 청과 러시아와의 국제적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기본적인 정책은 높은 소양을 가진 유학생을 기르는 것이 목표였다. 1896년과 1906년 사이에 유학하고 있는 학생들은 증가 추세에 있었다. 또한 외국에 유학생을 파견하는 중국 정부의 움직임도 활발하였다. 그러나 곧 두번째 국면이 찾아오게 되는데 중국은 여러 조항들을 만들어 수적으로 많은 유학생을 보내기 보다는 국내의 교육 활동을 보다 활발히 하고, 질적으로 우수한 소수의 유학생들을 파견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는 과거제 폐지 등 신정의 부활과 신해 혁명 등의 정치적 변혁기에서 국내의 상황을 견고히 하려는 중국 내부 사정과 관련이 깊다. 중국 학생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무시되어지고 정치적 변혁이 중국에서 일어날 때마다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남은 유학생들은 공부와 정치적 활동을 병행하면서 학업을 끝낸 후 고국으로 돌아가 정치가, 번역가, 작가 등의 활동을 하며 여러 업적을 남기거나 일본에 체류하면서 교수가 되거나 정치적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 전쟁을 끝으로 중국의 일본 유학생 파견은 종국을 맞았다. 결론적으로 일본 유학생 정책은 외국 문명에 대한 내부적 응답을 통해 제한되거나 지원되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청말 유일운동(留日運動)의 특징
  1. 중국인의 도일 유학
  2. 중국의 일본 유학 정책
 Ⅲ. 중국인의 일본 유학 특징
  1. 일본의 중국인 교육 기관과 교육과정
  2. 일본 유학 후 중국 지식인의 활동
 Ⅲ.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키워드

중국인 일본유학생 와세다 대학 홍문학원 유학생 정책 속성 교육 Chinese students in Japan Waseda University Hongmoon School The policy of study-abroad accelerated education

저자

  • 김보림 [ Kim, Bo-Rim | 충북대학교 역사교육과 부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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