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essay discusses a Tangun study by Takahashi, a Japanese colonial scholar, and its criticism by Korean nationalist Daejonggyo scholars. Takahashi insists that Tangun is a north king, not a nation-founder, and he criticizes Na-Chol's claim that Tangun is a founder of the entire nation. In Daejonggyo orthodox theory, three gods are one. Hwan-in is the creator god, Hwan-Ung is the education god, and Hwan-gem is the governing god. Takahashi asserts that in the north of Korea, Goguryo and Bakjae consider Tangun as a founder, and in the south the Silla say nothing about Tangun in the Samkuksaki. In Chinese history books, ZuMong is a son of Tangun, but in the Silla part, it starts not with ZuMong but with Hekgese. In this example, Goguryo and Bakjae exist, but Silla does not exit. Takahashi thinks of Hwan-in as a god in a Buddhism. Choe, Namseon insists Hwan-in is wrong, and that Hwan-kuk is right. Sin, Chaeho asserts that Hwan-in and Hwan-Ung are gods, and Dangun is human. Takahashi thinks that in Buyeo the relation of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Dangun is not clear, Jeong, Inbo clears it. The relation of succession to the throne is the Haemosu-Buru-Geomwa lineage and Dangun is named after coming of age. Takahashi says that the memorial service of Dangun began in Choseon. Kim, Dubong thinks the memorial service of Dangun as the Anniversary of the Tangun's Accession, it is Dongmaeong, Yeonggo, Mucheon. Takahashi insists Tangun is a nation founder in Korea and the Choseon dynasty after 1945. He asserts that Tangun does not exist from the beginning of Korea. This is a conspiracy that in a positive study, intends to diminish Dangun and nationalism in Korea. Daejonggyo scholars maintain independence and self reliance of scholarship from Japanese colonial schol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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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카하시를 중심으로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단군관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이들의 지향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다카하시의 단군관이 해방이전과 이후에 차이가 있는데 이점도 고찰하고 한다. 또한 이들을 주시하고 있었던 대종교 계열에 서 있던 민족주의학자들을 비판적 주장도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 다카하시는 단군전설의 원형을 태고에 단군이란 신인이 영변 묘향산 단목하에 내려와 신덕이 있고, 민중이 신앙함으로써 수장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북방군장이 있는 시초라 하였으니, 이것은 지극히 간단한 형태에 불과한 듯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첫째 단군은 북방군장의 시조이지 전민족의 시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민족의 시조라고 하는 것은 나철의 대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대종교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일체를 주장하면서, 환인 환웅도 단군이라고 한다. 다카하시는 북방과 남방을 분리하여 북방 즉 고구려나 백제는 단군을 조상으로 섬기지만, 남부지역 즉 신라에서는 단군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주장한다. 『삼국사기』에서 신라조에는 단군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천제인 단군의 아들인 주몽에 대한 언급이 중국문헌인 위서에 보이지만, 신라는 혁거세부터 시작하고 주몽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이를 통해 단군의 전설이 고구려 백제에는 있지만, 신라에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제왕운기』를 보지 못한 결과이다. 『제왕운기』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단군이 자손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다카하시가 환인을 불교적 존재로 보고 있는데 비해서 최남선은 환인이 아니라 환국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신채호는 단군만 인간으로 인정하고 환인 환웅은 신으로 인정한다. 다카하시가 부여왕통 계승과 단군의 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보고 있는데 비해서, 정인보는 해모수-부루-금와로 정리하고 단군은 나중에 부여가 정통성을 얻은 뒤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고 있다. 다카하시가 단군의 제사가 조선에 와서 시행되었다고 하는데 비해 김두봉은 단군의 제사를 개천절로 이해하고 있고, 동맹 영고 무천을 단군에 대한 제사로 보고 있다. 다카하시는 해방 후에는 단군전설이 고려시대에 조선민족을 하나로 하는 작업이 이루어져 조선시대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한다. 해방이전이나 이후나 모두 다카하시는 단군을 일본의 신과 같이 처음부터 있는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철저하게 단군에 대한 실증적인 문헌연구만을 통해서 단군으로 표상되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음모이다. 대종교학자들은 일본의 이러한 연구에 맞대응하여 학문적 독립권과 자주성을 주장한 셈이다.
목차
Abstract 1. 머리말 2. 다카하시와 대종교 3. 다카하시의 초기 단군연구 (1) 『삼국유사』의 불교적 성격과 환인 (2) 『삼국사기』와 부여의 왕위계승 (3) 단군제사와 개천절 4. 다카하시의 후기 단군연구 5. 맺음말 참고문헌 요약문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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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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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