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im of this paper is to argue that the essential structure of human life is to live together. To achieve this aim, I utilize Aristotle’s explanation of friendship and pleasure in the The Nicomachean Ethics. Aristotle takes great pains to emphasize that the perception of our existence is pleasant, and he attributes the pleasantness of this perception to the fact that it reveals life as good and oneself as having this good. Thus perceiving that one lives is a way of enjoying or appreciating one’s life as good. The perception that one lives is different from the intellectual act of reflecting on one’s goals and objectives. Because there is an affective dimension to the perception that should not be neglected or trivialized. According to Aristotle, friends critically contribute to making this affective experience possible. Friends illuminate the good in each other’s lives through joint perception. thereby sustaining the possibility of the enjoyment that reveals life as a whole to be good. In other words, friends need each other to feel alive. Joint perception refers to the way friends feel the life or existence of each other as good, meaningful, and desirable. Joint perception requires an intimate acquaintance with each other’s lives. This acquaintance consists in knowledge of the character, history, and trajectory of a life, as well as sympathetic understanding of how that life has been experienced. Therefore joint perception presupposes living together. If we, qua humans, must live together with friends and living together is an activity that saturates our lives, then it is reasonable to conclude that human living essentially is living together. I claim that this is exactly what Aristotle means by his foundational claim that humans are social by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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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9권 제9장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 그 자체의 본질적 구조가 ‘더불어 사는 것’임을 논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필자는 친구 및 즐거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 주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각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자기 지각이 즐거운 것은 자기 지각을 통해서 삶이 좋은 것으로서 드러나고 우리 자신이 좋음을 가지고 있는 존재자로서 드러난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지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좋고 가치 있는 것으로서 즐기거나 음미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의미한다. 우리 자신이 살아 있다는 지각은 우리의 삶의 목표를 성찰하는 지적 행위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지각에는 무시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는 정서적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서적으로 우리의 삶을 좋고 가치 있는 것으로 체험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바로 친구이다. 공동 지각을 통해서 친구들은 서로의 삶에서 좋음을 조명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로서의 삶이 좋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즐김의 가능성이 지속된다. 달리 말해서 친구들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하여 서로를 필요로 한다. 공동 지각이란 친구들이 서로의 삶이나 서로의 존재를 좋고, 의미 있고, 바람직한 것으로 느끼는 방식을 가리킨다. 공동 지각은 서로의 삶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 잘 알고 있음은 삶의 특성, 삶의 역사, 삶의 궤적을 아는 데서, 그리고 그 삶이 어떻게 체험되었는지에 대한 공감적 이해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공동 지각은 더불어 사는 것을 전제한다. 만약 우리가 인간으로서 친구와 더불어 살아야 하고 더불어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활동이라면, 인간의 삶은 더불어 사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인간은 본성상 사회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명제가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Abstract 1. 들어가는 말 2. 인간의 삶의 형식으로서의 지각 3. 전체로서의 삶에 대한 체험 4.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음미 5. 친구의 삶에 대한 음미 6. 친구의 존재론적 의의 7. 인간의 삶의 본질적 구조 8. 나오는 말 참고문헌 요약문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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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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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