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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漢江流域 喪失 原因과 長安城 축조 배경
Causes of the loss of Han river basin in Goguryeo and Reason about building Chang’an Capital city
고구려의 한강유역 상실 원인과 장안성 축조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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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아시아고대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아시아고대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7집 (2017.09)바로가기
  • 페이지
    pp.65-105
  • 저자
    李道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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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relationship between Goguryeo and Silla appeared in history books since the late 4th century. In the 5th century, Goguryeo, who was the guardian and master of Silla, wished to win the battle against Baekje, Using that gap, Silla escaped the influence of Goguryeo. Now, Silla and Baekje tried to overthrow Koguryeo’s South-South oppression as a common enemy. The greatest fruit of the Silla-Paekche alliance was the Han Rvier watershed in 551. In the following year, in the year 552, Koguryo proposed Communion to Silla. On the background, the Goguryeo epistemology was generalized. However, the record of introspection was based on Japanese data, and the possibility of domestic record was not true. The basic basis of the theory of Internal confusion was based on the “Zhou Shi(周書)” record of history. However, this record was revealed to have been carried over to later generations as the original record was compromised. It was also revealed that it did not reflect the internal situation of Goguryeo in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Instead, Goguryeo began to build the Chang’an Capital castle, a large city of 23km from 552. It was war that interfered with the construction of this new city. Goguryeo offered goodwill to Silla for the stable construction of the city. Shortly thereafter, Goguryeo attacked Baekje and allowed Silla to steadily control the Han River basin. Goguryeo and Silla’s Communion, who lasted for fifty years, fell apart as Silla held hands with the Sui(隋).
한국어
신라의 보호자이자 宗主 역할을 했던 고구려는 5세기대에는 宿敵 백제와의전쟁에 명운을 걸다시피했다. 그 틈을 이용해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이제 신라는 백제와 함께 공동의 적으로 설정한 고구려의 南進 압박을 타개하고자 했다. 羅濟同盟의 최대 결실은 551년의 한강유역 쟁취였다. 그 이듬해인 552년에고구려는 신라에 通和를 제의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고구려 內紛說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분설의 기록은 일본측 자료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국내 기록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내분설의 기본적인 근거는 『周書』 기록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록은원래 기록이 훼손됨에 따라 후대에 보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6세기 중엽 경의 고구려 內情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대신 고구려는 552년부터 무려 23km에 이르는 대규모 도성인 長安城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도성 축조에 방해가 되는 일이 전쟁이었다. 안정적으로 도성 축조를 위해 고구려는 신라에 通和를 제의한 것이다. 그 직후 고구려는 백제를 공격하여 신라가 안정적으로 한강유역을 지배할 수 있게 하였다. 50년간 지속된 고구려와 신라의 通和는, 신라가 隋와 손을 잡는 바람에 결렬되고 말았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고구려 한강유역 상실 원인
  1. 內紛說의 史料 검증
  2. 外侵說의 검증
 III. 고구려의 通和 제의 배경
  1. 내분설의 盲點
  2. 長安城 축조
 IV. 맺음말
 참고문헌
 

키워드

고구려 신라 백제 Goguryeo Silla Baekje Silla-Paekche alliance Communion theory of Internal confusion Chang’an Capital castle. 羅濟同盟 通和 內紛說 長安城

저자

  • 李道學 [ 이도학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아시아고대학회 [The Association Of East Asian Ancient Studies]
  • 설립연도
    1999
  • 분야
    인문학>기타인문학
  • 소개
    본 학회는 동아시아권역의 고대의 역사와 문화, 언어와 문학, 종교와 철학, 민속과 사회, 고고학 등에 관한 고대학 관련분야의 학문을 학제적 국제적인 협력과 유대를 통해 연구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연구의 질을 향상시키며,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학문발전과 문화교류 및 학자, 연구자, 회원 상호간의 유대와 국제적 친선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를 위하여 본 학회는 동아시아고대학에 관한 연구발표회, 학술강연회, 강독회, 학술답사, 도서출판, 학회지 발행 등의 사업을 기획하여 집행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아시아고대학 [DONG ASIA KODAEHAK ; The East Asian Ancient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229-8298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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