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한국 인문학

계당 최흥림(崔興霖)의 삶과 교유
Life and Association of Choi Heung-lim(崔興霖)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한중인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중인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6집 (2017.09)바로가기
  • 페이지
    pp.97-119
  • 저자
    조영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0957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6,0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Choi Heung-lim(崔興霖, 1506〜1581) was a hermit and a scholar of proud loneliness, who has not received attention in the facet of academia so far. When he was young, he withdrew into Daehak(大學) and Joongyong((中庸). Especially, he was called a ‘Sohak Teacher(小學先生)’ among the villagers, since he put the learning of Sohak(小學) into practice in his entire life. emphasized ‘Ipji(立志)’in learning and aspired to Confucian Methodology of Self-organization(爲己之學). Worrying about the changed times after Eulsa(乙 巳) year, he retired to hermitage in Geumjeokssan(金積山) Mountain of Boeun (報恩) and lived in free and easy retirement for his whole life without going outside the mountain after that. The collection of his works, Gyedangyoogo(溪 堂遺稿) contains a small number of Chinese poetry and prose and many of them were published in the collection due to the mistake of a later compiler, although they were not written by Choi Heung-lim(崔興霖). His poetry mostly used a simple vocabulary with not aesthetic embellishment, or elaboration, but it is hard to say that he showed an aspect of a professional poet. One of the crucial parts in Choi Heung-lim(崔興霖)’s career is that he encountered the best sages of those times, such as Cho Sik(曺植), Seong Woon(成運) and Seong Je-won(成悌 元) in Geumjeokssan(金積山) Mountain of Boeun(報恩). It is considered that associating with them made the reputation of Choi Heung-lim grow more.
한국어
최흥림(崔興霖, 1506〜1581)은 그간 학계에서 조명 받지 못한 은자이자 처사였다. 그는 젊어서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 침잠하였으며, 특히 소학의 내용을 평생 실천하였기에 향당에서는 ‘소학선생(小學先生)’이라 칭하였고 학문에 있어서 ‘입지(立志)’를 강조하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었다. 그는 을사(乙巳)년 이후로 시대가 변한 것을 근심스러워하면서 보은(報恩)의 금적산(金積山)으로 들어가 은거하였으며, 이후 산 밖을 나가지 않고 평생을 그렇게 자락(自樂)하면서 살았다. 그의 문집 계당유고에는 약간의 한시와 산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최흥림의 소작(所作)이 아님에도 후대 편찬자의 오류로 문집에 삽입된 것이 상당수 있다. 그의 시는 주로 미적 수식이나 조탁이 없이 간결한 어휘나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최흥림의 행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보은의 금적산에서 조식(曺植), 성운(成運), 성제원(成悌元) 등 당대 최고의 고현들을 만난 일이다. 이들과 교유함으로써 최흥림의 명성이 더욱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최흥림의 삶
 3. 『계당유고』와 그 오류
 4. 최흥림의 은거(隱居)와 고현(高賢)과의 교유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최흥림 보은 금적산 조식 성운 성제원 노수신 Choi Heung-lim(崔興霖) Boeun Geumjeoksan Mountain(報恩 金積 山) Cho Sik(曺植) Seong Woon(成運) Seong Je-won(成悌元) Noh Soo-shin (盧守愼)

저자

  • 조영임 [ Cho, Young-lm | 廣西師範大學 韓國語學科 敎授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중인문학연구 [Studies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0383
  • 수록기간
    199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한중인문학연구 제56집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