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화이론에 있어서의 케이사이와 나오카타의 입장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케이사이는 태어난 나라(生國)로서의 자국(自國)을 주인으로 하는 자국중심주의의 입장을 견지하였지만, 그렇다고 편협하고 격렬한 국가주의자나 국수주의자와는 거리가 있음을 논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자국중심주의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의『정헌유언』에서 배태된 화이관과 정통론이 결과적으로 막말(幕末)의 존왕양이론과 메이지유신, 그리고 그 후의 제국주의 일본의 형성에 자양분의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자국중심주의는 전환기나 위기적인 국면에서 타국에의 멸시와 침략으로 폭주할 가능성을 감추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케이사이와 직접적으로 일직선상에서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에도 후기의 국학자(國學者)로서 일본적 에스노센트리즘의 한 전형을 이루는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 1776∼1843)의 명맥을 잇는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 1769∼1850)의 “세계의 지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만국은 황국(皇國=일본)을 근본으로 하니, 황국은 참으로 만국의 근본이다.……대개 황국이 외국을 침략하는 것은 순응적인 것으로 하기 쉽고, 외국이 황국을 침략하는 것은 역행적인 것으로 하기 어렵다.…… 황국이 중국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절제해야할 것만 잘 하면 5∼7년도 걸리지 않아서 그 나라는 붕괴되고 와해될 것이다”와 같은 말은 자국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는 자국중심주의ㆍ애국주의가 갖는 사상으로서의 폭력성ㆍ위험성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나오카타는 중국ㆍ이적의 구분은 지리적인 명칭의 문제임을 제기하였고, 케이사이나 신도를 비롯한 자국중심주의와의 대결을 통하여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중시하는 입장은 자신의 나라의 장단점을 바르게 보려는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 또 자신의 것만이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하는 나르시스적인 자국우월주의로 이끈다는 견해를 나타내었다. 나오카타는 이런 관점 위에서 명칭의 형식보다는 중국(의 땅)이든 이적(의 땅)이든 그곳 사람들의 실생활의 수준, 문화수준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고 하며, 실천 여하에 따라 실직적인 차원에서의 중국ㆍ이적의 역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주장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아라노 야스노리(荒野泰典)도 지적하고 있듯이 후지와라 세이카나 나오카타의 입장은 일본의 역사에서 소수파였고, “사상적으로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배타적으로 자국의 이해나 문화만을 중시하려는 경향이 세계화와 동시에 그 반동으로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오카타가 제시하였던 입장이 국제질서의 안정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그것을 실현 가능한 사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한국일본사상사학회 [Korean Association For Japanese Thought]
설립연도
1997
분야
인문학>철학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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