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article is a study about gakushuin [学習院], the educational institution for the nobles of the Japanese imperial court established in 1847. The existing research has uncovered that gakushuin played a crucial role for the political emerging of the imperial court at the dawn of Japan’s modernization. The role of gakushuin within the context of ‘politicization’ of imperial court can be divided into two parts. First, the academic activities in the gakushuin aroused ‘political consciousness’ among court nobles. Second, its ‘space’ was used as the stage for politics. Yet at least the former role of gakushuin as the medium for the ‘politicization’ of the imperial court has only been uniformly and vaguely evaluated, and it lacks detailed examination of its cause and the process. The gakushuin was founded in order to ‘reform the morals [風儀]’ of young middle- and lower class nobles. Therefore, the policy of ‘personality education’ whose disciplines were based especially on Confucianism was strongly reinforced. But because many of the educators at gakushuin were heavily influenced by a vigorous Sonnō ideology like that of Asami Keisai, in the actual course of study, the ‘political consciousness’ of young court nobles did not reflect the initial purpose of the court education. In addition, since the leaders of the court in the 1840s had also been deeply influenced by Sonnō ideology, they were not particularly alarmed by this growing trend in court education. As a consequence, gakushuin overstepped the early goal of court leaders, and eventually led to the revolt against ‘early modern imperial court system’ by the middle- and lower class nobles when an issue came to light regarding 1858 US-Japan Treaty of Amity and Comme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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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47년에 개교한 공가의 교육기관인 학습원(學習院)을 다루는 논의다. 학습원은 막말(幕末) 조정의 정치적 부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학습원이 조정의 ‘정치화’에 행 한 역할은 먼저 학습원에서의 ‘교육’이 공가사회의 ‘정치의식’ 형성을 촉발한 것, 그리고 학습원이 라는 ‘공간’이 정치활동의 무대로 이용된 것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지만 특 히 전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학습원이 공가의 정치의식 형성과 조정의 부상에 기여했다고 일률적으 로 막연히 평가될 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과 요인을 통해 이뤄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충 분하다. 학습원의 설립 이념과 특히 초기의 운영 실태를 보면, 조정 상층부가 학습원을 설립한 목적은 중하 급 공가의 풍의(風儀) 쇄신이었으며, 이에 따라 유학에 중점을 둔 ‘인성 교육’의 방침이 관철되었 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학습원 강사의 대다수가 아사미 게이사이(淺見絅齋)의 학설과 같은 강경 한 존왕론을 이어받은 인물들이었던 등의 이유로, 실제 교육과정을 통해서는 조정 상층부의 의도 와는 달리 중하급 소장공가들의 정치의식이 고양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조정 상층부 스스로조차 도 1840년대의 단계에 오면 이미 존왕 사상을 깊이 내재화하고 있었기에 학습원에서의 이러한 움 직임에 대해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학습원은 ‘인성 교육’이라는 조정 상층부의 초기 의도를 넘어, 중하급 소장공가들이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에 문제를 제기하고 섭관가 중심의 근세 조정 체제에 반기를 드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목차
1. 조정체제의 변혁과 학문의 역할 2. 학습원 설립 이전: 학문의 점진적 활성화 3. 학습원의 설립과 운영: ’풍의 쇄신’의 지향 1) 설립의 과정 2) 교육 이념과 운용 실태 4. 공가의 ‘정치화’와 조정 상층부의 복합적 관계 1) 학습원과 조정의 ‘정치화’ 2) ‘정치화’를 촉진시킨 요소들 5. 학습원과 공가의 ‘정치화’가 갖는 의미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설립연도
2004
분야
사회과학>지역학
소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일본 연구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4년11월19일 설립되었다. 본 연구소는 서울대학교에서 일본지역학의 교육ㆍ연구 체제를 갖춘 국제대학원이 주관하며, 서울대학교의 다양한 학문 분야의 일본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 연구자들이 모두 참여하여 운영된다.
일본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 정보네트워크 구축, 연구활동 지원, 대외적인 학술ㆍ인물 교류 등 일본연구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그간의 실적을 토대로 하여 새롭게 출범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는 오늘날 국내외 정세의 변화를 배경으로 일본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한국의 일본 연구 및 교육의 발전에 기여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연구의 새로운 틀을 창출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