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서도소리 풍구타령의 전승에 관한 고찰
A study about the reconstruction of the Seodosori(서도소리) Poonggu-taryeong(풍구타령) in South Korea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한국국악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국음악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1집 (2017.06)바로가기
  • 페이지
    pp.143-175
  • 저자
    윤영해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0569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7,5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present South Korea music society, poongu-taryeong is introduced to students' textbooks as one of the labor related folk song from North Korea. However, it is regrettable that there is no specific musical research about that type of folk music. From this point of view, this paper will try to examine and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Poongu-Taryeong from North Korea. North Korea 's Poongu-taryeong can be divided into two main types. The one is named Hwanghaedo-style, and the other is named Hamkyeongdo-style. They are mainly different from the structure of the lylics from the repeated melodic pattern. These two types of songs are all related to the physical labor of blacksmith. The music of non-professional musicians, Poongu, was tried to be accepted by the professional musician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However, these experimental attempts were not accepted by the general public as a fixed repertoire. However, such attempts have also served as a basis for accepting the local labor music as a music of professional musicians in later years. The poongu-taryeong in South Korea is similar to that the style of Hwanghae-do(황해도) song in North Korea. Yang Sowoon(양소운) was born and raised in Hwanghaedo and he even learned singing from Kim Jinmyeong(김진명). About 20 years after Yang Sowoon first called poongu-taryeong, Kim Kyung-bok recorded the same style song. Kim Kyungbok's song is also based on the Hwanghaedo style song, but it is more like popular song called Saseol-Nanbonga. In conclusion, the song called poongutaryeong in South Korea is based on the style of Hwanghaedo song in respect of the structure and lyrics. However, as the roles of the labor-centered song changed from being a popular recreational song, the specific description of the work reflected in the song's lyrics became increasingly fuzzy.
한국어
현재 남한지역에서 풍구타령은 초중고의 교과서에도 황해도 지방 노동요의 한 곡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풍구질 노동요로서의 풍구타령의 유형과 분포 및 북한지역 풍구타령과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는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된 바가 없다. 이에 본고에서는 북한지역 토속 노동요로서의 풍구소리를 채록한 악보와 음원을 통해 유형과 분포 및 사설과 음악적 특징 등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북한의 토속 노동요 풍구타령이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양강도 등을 중심으로 수집되었으며 특히 황해도와 함경북도에서 채록된 곡들 중 일부는 각각 황해도형과 함경도형의 풍구소리로 구분할 수 있음을 파악하였다. 이 두 가지 유형은 각각 곡의 형식을 결정짓는 후렴구의 형식과 가사가 다름에 기인한다. 황해도형 풍구소리는 주로 황해도 지역에서 불리우며 김진명의 풍구소리로 대표되며 3소박 4박 장단 4장단이 한 소절을 이루는 형태이며 ‘슬근살짝 불어도 만대장이 나온다’라는 후렴구가 포함되는 유형이다. 함경도형 풍구소리는 총 10곡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곡으로 밝혀졌다. 후렴구는 2장단에 걸쳐있으며 ‘에슬렁 불어도 신선풍기 란다’라는 형태가 기본을 이룬다. 이외에 기타로 구분된 유형의 악곡들도 간혹 남녀간의 사랑을 풍구질 노동 또는 도구와 관련지어 언급하고 있거나, 구체적으로 대장간의 풍경, 풍구질 노동과 관련된 동작 또는 도구에 대한 설명이 세세히 묘사되어 있어 풍구질 노동과 관련된 토속민요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풍구질 노동과 관련한 토속 민요를 전문 음악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는 20세기 전반기에 시도되었는데 유성기음반에 풍구제를 소재로 한 재담소리가 녹음된 바 있으며 사설난봉가의 특징적인 사설로 풍구가 모티브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서도소리 전문음악인들의 시도는 단순한 시도에 그치며 하나의 고정된 레퍼토리로 자리 잡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후대에 토속노동요를 전문음악인의 음악으로 수용하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 남한지역에서 불리우는 풍구타령의 계보는 1970년대 황해도 출신 음악가들의 활약에 기인한 것이다. 양소운은 황해도 출신이었으며 그의 스승이었던 김진명과의 사승관계 등을 계기로 북한의 토속 노동요 풍구타령 중 황해도형의 풍구타령을 재현하였다. 시간과 거리라는 물리적 한계와 기억에 의존한 양소운의 풍구타령은 황해도형 풍구타령의 음악적 형식과 후렴구 등을 차용하였으며 가사의 일부도 충실히 재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가사의 내용은 구체적인 노동의 묘사나 대장간 풍경 보다는 통속가요에 가깝게 남녀간의 사랑을 서술하는 부분에 비유되는 수준으로 변모하였다. 양소운 이후에는 같은 황해도 출신인 김경복이 풍구타령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김경복의 풍구타령 역시 황해도형의 풍구타령의 후렴구를 차용함으로서 음악의 기본적인 형식을 토속 노동요에 가깝게 재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구체적인 노동 또는 도구와 관련된 서술이 남녀간의 사랑을 비유하는 도구에 그치고, 통속가요 사설난봉가의 특징적인 사설과 선율형을 차용함으로서 노동요에 기반한 통속가요에 더 가까운 형태로 정착되었다. 즉 현재 남한지역에서 불리우는 풍구타령은 북한지역 풍구질 노동 관련 토속 노동요 황해도형 풍구소리를 수용함으로서 토속 노동요로서의 위상과 통속가요로서의 역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토속민요의 통속화는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난 토속민요로서 공연무대의 레퍼토리로 전환을 위한 필수적인 수순일 것이며, 현재의 공연 레퍼토리로서 김경복의 풍구타령이 정착된 점은 그가 시도한 탈맥락화가 대중의 요구와 부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남한에서 불리우는 풍구타령은 북한지역의 풍구소리 중 황해도형 풍구소리의 음악적 형식과 사설을 수용한 결과이며 수심가토리를 사용하거나 가사의 내용에서 풍구질과 관련된 내용이 남녀의 사랑을 비유하는 매개체로 전개되는 양상이 뚜렷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전문음악인들이 토속민요를 수용하면서 노동의 측면보다는 유희요로서의 기능을 충실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지역 토속민요에서 광범위하게 전승되었던 풍구질 관련 노동 민요의 광범위한 향유와 20세기 전반기 사설난봉가에서 비롯된 풍구의 상징성은 이후 남한에서 북한민요로서 풍구타령을 재현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북한의 토속민요 풍구소리
 Ⅲ. 서도소리 풍구타령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풍구타령 사설난봉가 황해도 북한민요 양소운 김경복 재담소리 Poongu-taryeong(풍구타령) Yang Sowoon(양소운) Kim Kyungbok(김경복) Jaedamsori(재담소리) Saseol-Nanbonga(사설난봉가)

저자

  • 윤영해 [ Youn, Young-Hae |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선임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국악학회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 설립연도
    1948
  • 분야
    예술체육>음악학
  • 소개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국음악연구 [STUDIES IN KOREAN MUSIC]
  • 간기
    반년간
  • pISSN
    1975-4604
  • 수록기간
    1975~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679 DDC 780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한국음악연구 제61집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