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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지역의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Donghak and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Asan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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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역사와 교육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역사와 교육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24집 (2017.05)바로가기
  • 페이지
    pp.215-243
  • 저자
    성주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0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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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the region of Asan with affluent crops and geological advantage early Yangban noblemen settled down and they took advantage of their social status to focus on the ownership of land. As a result peasants suffered from double torture of exploitation and plunder under the contradiction of feudal land system and caste system. This social and economic background had a significant impact on Donghak's inflow and propagation in Asan region. Donghak seemed to be promoted in the region of Asan in late 1860s or early 1870s. At this time the people who were identified as Donghak devout related to Asan are An Gyoseon, An Goyil, An Gyogang, An Gyobaek, and An Gyosang. They mostly were known as relatives of An Gyoseon. They supported financially early Donghak religious body or made huge contributions to organizing the religious body. In addition they participated in a crucial role like participating in publishing scripture in early Donghak religious body. In this regard Donghak believers in Asan were said to serve a crucial role in the religious body early. However Donghak organization in Asan failed to participate in the first Donghak Peasant Revolution during the process of promoting Donghak Peasant Revolution. This is because that it was influenced by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the region of Naepo. During the process the revolution showed the limit of not being actively promoted surrounding the region of Asan. As Donghak organization in Asan participated in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Naepo region including Yesan and Hongju, they couldn't develop direct combat with government army or Japanese army in Asan. But An Gyoseon who were from Asan and playing an active part in Asan artillery Jeopsu engaged in the revolution surrounding Gongju region and then were arrested by government soldiers and then executed in Nambeolwon and 3 days later were humg in the square of Seosomun. At that time this fact was reported in the Japanese newspapers and An Gyoseon was regarded as showing his influence as a leader. This seems to be revaluated as the looks of Donghak Army in Asan as well as An Gyoseon.
한국어
아산지역은 풍부한 물산과 지리적 이점으로 일찍이 양반사족이 정착 하였으며, 이들은 신분적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토지의 소유를 집중하 였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봉건적 토지관계의 모순과 억압된 신분제 아 래에서 착취와 수탈의 이중고에 시달렸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은 동 학이 아산지역에 유입 내지 포교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아산지역에 동학이 포교되기 시작한 것은 1860대 후반 내지 1870년대 초반으로 보인다. 이 시기 아산지역과 관련된 동학교인으로 확인되는 인 물은 안교선을 비롯하여 안교일, 안교강, 안교백, 안교상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안교선의 친인척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초기 동학교단의 경제 적 후월을 하거나 교단을 정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들은 초기 동학교단에서 경전 간행에 참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 였다. 이런 점에서 아산지역 동학교인은 일찍부터 교단에서 중추적인 역 할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산지역 동학조직은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 른바 1차 동학농민혁명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는 내포지역 동학농 민혁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2차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자 아산 지역 동학조직은 혁명 대열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하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아산지역 동학조 직은 예산, 홍주 등 내포지역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아산지 역에서 관군 내지 일본군과 직접적인 전투를 전개하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아산 출신으로 아산포대접주로 활약하였던 안교선은 공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바 있고, 이후 관군에 체포되어 남벌원에서 처 형되었다가 서소문 광장에서 3일간 효시되었다. 당시 일본 신문에 이러 한 사실들이 잘 보도되었는데, 안교선은 지도자로서의 풍미를 보이고 있 다고 평가하였다. 이는 안교선 뿐만 아니라 아산지역 동학군의 모습이라 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아산지역 동학의 포교와 조직화
 Ⅲ. 아산지역의 동학농민혁명과 동학농민군의 활동
 Ⅳ. 아산대접주 안교선과 최후의 모습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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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성주현 [ Sung, Ju-Hyeon | 청암대학교 연구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역사와 교육학회 [The History Education Association]
  • 설립연도
    1989
  • 분야
    사회과학>교육학
  • 소개
    역사와 역사교육의 학술적 연구 뿐만 아니라 역사현장에서 적용을 목표로 하는 실천적인 면모도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단순한 축적만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인 조상의 살아 숨쉬는 삶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들의 짧은 생각으로 고통과 아픔을 던져준 것은 없었는지, 모든 것을 수용하여 보다 나은 공동체, 열리고 참된 오늘의 삶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새롬찬 세계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나아가 실천해야 활짝 열린 미래가 올 것입니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후세대를 교육시켜 참된 역사를 알리고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역사교육의 기본 텍스트인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부속 학회인 역사와 교육학회에서 학술 발제와 점검을 통해 진정한 역사와 역사교육이 연구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장을 설 것입니다. 활기차고 열린 미래의 세계를 위해 우리 모두 올곧은 역사교과서로 진정한 역사교육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뜻과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역사와 교육 [The History Education Review]
  • 간기
    반년간
  • pISSN
    2093-5021
  • 수록기간
    1990~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374 DDC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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