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studies the change of musical instruments which were supposed to be buried with the dead body in a royal funeral(明器樂器, myeonggi instruments). This paper clarifies the funeral rite, the kinds of the musical instruments for burial, the contents of the production, and the conveyance of the instruments, by analyzing Gukjangdogam'uigueo(國葬都監儀軌, a book for national funeral) and silrok(實 錄, True record of Joseon Dynasty), a book of Five Rites五禮書, which were produced in Joseon period. The kind and material of the musical instruments for burial began to change under the reign of King Jeong-jo正祖. Before King Jeong-jo's reign, the musical instruments for burial consisted of 31 kinds including the instruments for court music, the instruments for the Chinese music in Tang dynasty and the instruments of native Korean music. However, in King Jeong-jo's reign, only 11 kinds of the instruments for court music were buried in the funeral. In this period, the material of the bell was changed from mud to copper. Gyeong磬 also began to be made by ceramic, not by mud. These instruments were conveyed to the tomb, being fixed in an instrument box. This kind of change implies the policy of King Jeong-jo, who tried to reconstruct the national rites by recovering the old music and the old system and reviving the court music. The way which took only the instruments of court music for burial at the funeral of King Yeong-jo英祖 was taken when King Jeong-jo was dead. It became a new tradition of royal funeral after King Cheong-jo's 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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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 왕실의 국장(國葬)시 시신과 함께 광중(壙中)에 부장하는 악기인 명기악기(明器樂 器)의 시대적 변천을 연구한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시대에 제작된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와 실 록, 오례서(五禮書)의 기록을 분석하여 오례(五禮) 중의 흉례(凶禮)로서 치러지는 국장의 주요 과정과 함께 명기악기의 종류, 제작 내용과 이동 상황을 아울러 살펴보았다. 명기악기는 정조대(正祖代)를 기점으로 종류와 재료 등이 변화한다. 정조대 이전의 명기악기에는 아 악기와 당악기, 향악기가 모두 포함되어 악기의 종류가 31종으로 다양하였으나 정조대 이후 아악기만 을 부장함으로써 11종으로 축소되었다. 또 종(鐘)의 제작 재료도 변화하여 숙종과 그 이전시기 국장의 종은 진흙을 구워 만들었으나 정조대 이후에는 동(銅)으로 제작하여 원 재료에 가깝게 되었다. 경(磬) 또한 진흙으로 제작하던 것에서 자기(磁器)로 제작하는 전통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명기악기 는 악기궤(樂器櫃)에 어교(魚膠)로 바닥을 고정시켜 넣어 능(陵)으로 옮긴 후 광중에 부장한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치른 영조의 국장에서부터 아악기 일색의 명기를 부장한 사실은 아악의 부흥을 꾀하고자 했던 정조의 국가전례정비 노력의 상황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고악(古樂)과 고제 (古制)의 회복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던 정조의 국가운영 맥락이 왕의 무덤에 부장하던 악기의 종류에서도 확인되는 셈이다. 정조의 즉위와 함께 치러졌던 영조국장시의 명기악기가 아악기로 고정된 전통은 정조 자신의 사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치러지는 모든 국장의 명기악기도 아악기로 고정되 어 이어짐으로써 정조대 이후의 조선 왕실 국장문화의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