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eme of this paper, boy dancers, mudong 舞童, can be defined as boys aged from 8 to 15, who performed not only dance but also vocal music for the various types of rituals of the royal court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reasons for the existence of boy performers is very clear: dancing by girls in the royal court was viewed negatively. Therefore, the necessity for performers was met by training boy performers until their puberty The boys could perform dance and music beautifully and elegantly with silky voices similar to female performers. After proper training, they could participate in a variety of palace rituals, festivals and banquets for the royal family and diplomatic envoys. There was critical problems in this mudong system: upon completing their training, the boy performers' working period was limited due to their quick physical growth after puberty. There was no need of adult mudong forthe court music. This critical problem caused a short age of mudong but also led to their recruitment by the palace after their retirement as mudong. This paper will examine how mudong were trained and treated in the palace while exploring their history.
한국어
무동이란 조선시대 궁중의 각종 의례에서 춤을 추는, 8세에서 15세 이하의 남자 아이를 말한다. 이들은 궁중의 여러 제사와 연향에서 주로 춤과 노래를 담당하였다. 조선의 궁중에서는 남성들의 의례에서여성 예술인이 춤을 추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여성을 대신하여 춤과 노래를 담당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고, 그에 가장 적합한 것이 남자 아이였다. 물론 남성의 성징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춘기 이전의 어린 남자 아이여야 했다. 이들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선이 고운 동작이 가능했고, 여성의 고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므로 일정 기간의 훈련을 거쳐 궁중의 연향이나 외국 사신연에동원되어 춤과 노래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성장이 한참 이루어지는 나이에 무동으로 선발되기 때문에 재주를 모두 익혀 기예가익숙해질 만하면 곧 장정이 되었다. 이는 무동의 필요 인원을 보충할 때 늘 어려움이 따랐던 이유가되었다. 또 이들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무동으로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인력의 활용방안 또한 모색되어야 할 내용이었다. 수년에 걸쳐 좋은 기예를 익힌 이들을 궁중에서 활용하는 일은 무동으로 훈련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소년 무용수인 무동이 조선시대에 어떻게 길러지고관리되었으며,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그들의 존재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국문요약〉 Ⅰ. 무동, 누구인가? Ⅱ. 조선시대 무동의 탄생 맥락 Ⅲ. 무동제도의 운용 양상 Ⅳ. 무동의 활용과 존재적 한계 Ⅴ. 무동존립의 비판 양상 Ⅵ. 마무리 〈참고문헌〉 Abstract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