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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전기와 관련된 중국 방상시의 기록 고찰
Study on record of chinese bangsangsi related with Goryeo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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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국악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국음악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8집 (2010.12)바로가기
  • 페이지
    pp.139-169
  • 저자
    박은옥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98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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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Bangsangshi, the topic of this research, is a figure that originated in China, but put down roots in the Korean Peninsula with the introduction of Narye. Until now Narye has been researched in Korea with focus on rituals, but it can be said that no research has been done whatsoever on Bangsangshi in Narye. For this reason, this study investigated Bangsangshi, and tried to gain a systematic understanding of Bangsangshi. As Narye has a very long history and the activity area of Bangsangshi it very broad, however, this study did not deal with all aspects of Bangsangshi. Instead, only Bangsangshi in Court Narye was investigated. The results of this investigation is shown in . According to
, in the early days of Narye, China's Bangsangshi used to be Gwangbu (狂夫) in a low position, but had an absolute position and a magical function. With the passage of time,Bangsangshi also went through change, and was driven out of the position of the most important leader and thrown into a subordinate position. In addition, the magical function of Bangsangshi deteriorated, and instead the musical function grew stronger. It can also be seen in the changes of the person in charge of Bangsangshi. Gwangbu (狂夫) or Junghwangmun (中黃門) used to be in charge of Bangsangshi, but later Gongin (工人),who mostly plays music, took charge of Bangsangshi. It reveals that the function of Bangsangshi was shifted to the musical function, and the fact that Bangsangshi is in charge of dance and music can also prove it. Unlike China's Bangsangshi that underwent many changes over time, the Bangsangshi of the Korean Peninsula can be said to retain its original form relatively well. It can be confirmed by many aspects, e.g. the person in charge of Bangsangshi, its roles and functions in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and the fact that everything except the total number is almost the same.
한국어
금번의 연구 대상인 방상시는 중국에서 기원하였으나, 나례의 유입에 따라 한반도에서도 오래전에뿌리를 내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나례는 의례를 중점으로 연구되어 왔으나, 나례에서의 방상시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전무(全無)한 상태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 논문에서는 방상시를 가지고 연구하였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례의 역사가 워낙 오래되었고, 방상시의 활동영역 역시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이번의 연구에서는 이들을 모두 다루지 못하고 궁중 나례에서의 방상시만을 그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그 결과로<표 1>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고, <표 1>을 통해서 보면 중국의 방상시는 나례의 초기에 지위가 낮은광부(狂夫)로 구성되어 있으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주술(呪術)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의 변천에 따라 방상시 역시 점점 변화하게 되어, 가장 중요한 통솔자의 위치에서 물러나 부속적인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주술적인 기능은 갈수록 쇠퇴하게 되었고, 그 대신음악적인 기능은 점점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방상시 담당자의 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부분으로, 광부(狂夫) 혹은 중황문(中黃門)이 방상시를 담당하는 것, 그리고 음악연주를 위주로 하는 공인(工人)이 방상시를 담당하는 변화가 바로 음악기능으로 전환하게 된 사실이며, 춤과 노래를 담당하는점에서도 이를 증명할 수 있다. 중국의 방상시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는 양상과 달리 한반도의 방상시는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방상시의 담당자, 역할, 그리고 기능 등을 통해서확인할 수 있으며, 인원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거의 같다는 것에서도 증명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방상시는 조선시대 후기까지 나례의 소멸에 따라 그 모습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부분에서탈놀이와 관련을 짓고 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많은 의문점만을 남기고 있는실정이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중국 문헌자료에 나타난 방상시
 Ⅲ. 한국의 방상시
 Ⅳ. 한국과 중국의 방상시 비교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방상시 주술적 기능 음악적 기능 광부 중황문 공인 Bangsangshi magical function musical function Gwangbu Junghwangmun Gongin

저자

  • 박은옥 [ Piao enyu | 호서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국악학회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 설립연도
    1948
  • 분야
    예술체육>음악학
  • 소개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국음악연구 [STUDIES IN KOREAN MUSIC]
  • 간기
    반년간
  • pISSN
    1975-4604
  • 수록기간
    1975~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679 DDC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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