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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의 잡가와 민요
The Discourse of Japga and Minyo in Colonial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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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국악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국음악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6집 (2009.12)바로가기
  • 페이지
    pp.215-242
  • 저자
    이소영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98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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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investigates how the discourse of Minyo have been different between typography and phonography. In addition, this study investigates how the viewpoint of colonized intellectuals has been evolved differently between Hyangtominyo(folk song)and Tongsokminyo(popular song of the traditional idiom) The term of ‘Minyo‘ emerged since the 1920s at the media of typography. In 1920s the concept of Minyo included folk songs and new poem of the folksong‘s style. In 1930s the concept of the Minyo was so enlarged more that comprehended popular songs. In addition Minyo has been considered as representative genre containing ethnic identity. The other hand, at the media of the phonography the term of Minyo hae been used since the late 1920s. The starting moment has been owed the hybridization between western musical elements and Korean traditional elements. Finally I provided an in-depth analysis of difference of discourse and attitude between Japga and Minyo, so that I presented difference modernity of Minyo and pre-modernity of Japga. Especially I illuminated how musical hybridization got involved in the discourse about minyo interpreted by colonized intellectuals during the late 1920s-the early 1930s.
한국어
활자매체에서 민요란 용어가 현재 사용되는 의미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20년대부터 인데 이때 민요 개념은 창작민요시와 향토민요를 포괄한다. 1930년대에 오면 민요 개념은 더욱 확대되어 향토민요, 창작민요 외에 통속민요와 ‘민족의 가요’로서 민족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등 그 외연이 넓어진다. 한편 소리매체인 음반에서 민요란 개념은 1920년대 말에 등장하게 되는데 양·국악의 혼종화로 재구성된 민요합창의 출현이 그 계기가 된다. 활자매체와 소리매체에서 지식인들이 다루었던 민요에 대한 인식과 그 구축방법은 매체적 성격 차이로 인하여 다르게 나타났다. 먼저 활자매체에서 민요 담론의 중심을 이룬 향토민요는 조선적인 것을 구성하는 향토성과 지방성을 담아냄으로써 근대적 의미의 민요로 구축된다. 이에 비해 통속민요는 1920년대 후반까지도 민요로 표상되지 못하였고 ‘패가’(敗歌)로서 잡가로 지칭되었다. 통속민요가 잡가적 이미지를 벗고 근대적 담론의 기제로서 민요로 전환되는 데에는 유흥성과 전근대성을 탈색시키는 일련의 작업이 필요했다. 이는 활자매체에서의 가사개작과 민요 읽기에 있어서 맥락의 재구성 작업, 소리매체인 음반에서 혼종화를 통한 음향적 재구성으로 이루어졌다. 끝으로 민요라는 용어와 그 개념 전개가 근대적인 시선 속에 의도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전래된 노래로서의 제반 전통가요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식민지 근대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변용되어 문화적인 전이를 이룬 것임을 의미한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민요 용어 사용과 그 전개 양상
Ⅲ. 근대적 담론으로서의 민요 구축
Ⅳ. 맺음말
〈참고문헌〉
〈부록표〉
Abstract

키워드

민요 잡가 향토민요 통속민요 창작민요시 음악적 혼종화 향토성 Minyo Japg

저자

  • 이소영 [ Lee So young |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종교연구소 연구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국악학회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 설립연도
    1948
  • 분야
    예술체육>음악학
  • 소개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국음악연구 [STUDIES IN KOREAN MUSIC]
  • 간기
    반년간
  • pISSN
    1975-4604
  • 수록기간
    1975~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679 DDC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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