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do popular folk song Heung-Taryeong has thus far been assumed to have the relationship with Gyeonggi popular folk song Heung-Taryeong(Cheunan-samguri), based on the similar text of a refrain. However, this was not assured because of the lack of the musical common things. This paper verified these two songs‘ close musical relation. This study argues that the origin and evolution of Namdo popular folk song Heung-Taryeong by analyzing songs in the early and late 20th century and comparing with Gyeonggi popular folk song Heung-Taryeong. NamdoHeung-Taryeong was originated from Gyeonggi Heung-Taryeong by the Namdo Sadangpae successors when they went into the theater, seeking repertoires in order to succeed in their public performances in the early 20th. There were two different versions of Namdo popular folk song Heung-Taryeong in the early 20th century:old and new ones. The former, which is found still fewer than the latter in the recordings and the music books, is simpler in terms of tune and melody and is faster in tempo. Also this one has many textual and musical things in common with Gyeonggi Heung-Taryeong. In this respect, it approximates to the original source of Namdo Heung-Taryeong. Meanwhile, the latter is similar with the recent song, which is affected by Pansori in the textual and musical way, and has few or no more musical things in common with Gyeonggi Heung-Taryeong. However, since the late 20th, only new version has come to be transmitted. In conclusion, Namdo Heung-Taryeong was more closely related with Gyeonggi Heung-Taryeong in terms of text and musical features in the early 20th century. However, it was transformed into a more Namdo musical style, which was causedby the influence of other Namdo music, Jabga and Pan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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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남도민요(잡가) 중 하나인 <흥타령>은 경기 <흥타령>과 후렴구 사설이 유사하여 상호 관련성이 있으리라 추정되기도 하였지만, 음악적으로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 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런데 20세기 전반기 남도 <흥타령>이 사설과 음악에서 현행보다 경기 <흥타령>과 더 많이 유사한 사실이 발견됨에 따라, 경기와 남도 <흥타령>의 음악적 관계와 남도 <흥타령>의 형성과정 및 그 배경을 밝혀낼 수 있었다. 20세기 전반기 남도 <흥타령>의 특징을 고찰한 결과,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리 선율의 특징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제1형, 제2형)이 존재한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제1형은 가장 초기 음반인 송기덕 창(1913)과 산타령패 소리를 수록한 最古 악보집인 『조선속곡집』(1914)등에 나타나며, 제2형에 비해 발견되는 수가 매우 적다. 그런데 제1형은 가장 초기 소리인 송기덕 창이 현행 소리보다 선율이 훨씬 빠르며 단순 고졸하고, 경기 <흥타령>과 리듬통사구조가 흡사하며 공유하는 사설이 많아, 경기 <흥타령>과 상호 연관성이 매우 컸던 사실이 확인된다. 그런데 경기 <흥타령>은 근자에 필자에 의해 19세기 사당패 <흥타령>을 근간으로 20세기 초 신민요로 재창출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그리고 남도 <흥타령>은 초기 형태로 갈수록 현행보다 훨씬 사설과 음악이 단순하며 경기 <흥타령>에 가까워지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이상의 정황들로 볼 때, 남도 <흥타령>은 경기 <흥타령>이 창출될 무렵,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를 토대로 소위 남도 버전으로 만들어진 소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2형은 20년대 후반 이후에 녹음된 소리가 모두 여기에 해당하며 제1형에 비해 발견되는 수가 많아, 이 시기의 보편적인 남도 <흥타령>으로 보인다. 제2형에 해당하는 소리들은 제1형보다 선율이 상당히 기교적이고, 속도가 좀 더 느리며 2소박 12박자 중모리장단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사설과 리듬통사 및 악곡구조 등 부분적으로 제1형의 특징을 여전히 지니고 있어, 제1형과 현행의 과도기적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제2형의 변화는 남도 잡가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다른 잡가 및 남도음악의 영향으로 일어난 현상으로 보인다. 요컨대 제1형과 제2형은 일종의 古調와 新調의 관계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경기 <흥타령>과 사설 및 음악적 특징이 유사한 남도 <흥타령>은 전승되지 않게 된다. 판소리 여류 명창들에 의해 전승되고 더욱 남도화가 이루어지면서, 독창은 사설내용이 많이 변화하고 그 길이도 장절형태로 길어진다. 이로 인해 선율도 길어지게 되며, 다른 남도잡가 및 판소리의 영향으로 리듬 및 선율이 상당히 기교적인 형태가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남도 <흥타령>은 형성 시기 및 그 과정이 사당패소리를 근거한 형성된 경, 서도 통속민요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이에 20세기 벽두 경, 서도 통속민요 및 입창이 경, 서도 사당패 계승집단에 의해 대거 재창출되며 극장공연에서 인기를 얻을 무렵, 이를 참조하여 초기 잡가광대, 이른바 남도 사당패계승집단 또는 그 영향을 많이 받는 집단이 형성시켰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20세기 전ㆍ후반기 남도민요 〈흥타령〉 Ⅲ. 경기 〈흥타령〉과 남도 〈흥타령〉의 관계 Ⅳ. 남도민요 〈흥타령〉의 음악적 형성과정 및 그 배경 Ⅴ. 결론 〈참고문헌〉 <참고악보> Abstract
키워드
남도민요 <흥타령>경기민요 <흥타령>사당패소리 <흥타령>형성과정남도화남도 사당패계승집단Namdo popular folk song Heung-TaryeongGyeonggi popular folk song Heung-TaryeongOriginEvolutionOld versionNew versionNamdo musical stylePansoriNamdo Sadangpae successors古調新調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