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are two kinds of farmers' band music; one is a communal ritual music performed by villagers on special days such as the 15th of January, and the other is a performance by professional musicians. They are different in many aspects.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to distinguish one from the other is the musicianship. The sangsoe, or the leader of the band who plays the small gong (kkwenggari), is the essential factor in distinguishing the difference of the band. The village ritual is led by dureongsoe (lit. “levee gong”) selected among the villagers and the professional band is led by tteunsoe (lit. “ wandering gong”), usually inherited musicians. In the traditional society, a person who joined the village band was suffered from the social contempt. Therefore, it needed a special social condition to become a leader of the band, along with the excellent musical ability and leadership. Most of the leader were born in a musician family. Many of the father of the leader were members of the band. The family background enables a leader- to-be experience the music from his early years and join the band without hesitation. In other words, most of the leaders, regardless of dureongsoe or tteunsoe were ascribed musicians rather than acquired musicians. There are so many different elements between the village band led by dureongsoe and the professional band by tteunsoe. Firstly, a flag which has symbolic meaning to receive the tutelary deities is an indispensible implement in the village band. A flag is not need in a professional band which performs on stage. Secondly, there are many dancers, called japsaek (lit. “miscellaneous colors”), who enhances the cheerful mood of the village ritual. The dancers are not so important in and professional band whose performance aims to rather passive audience. Thirdly, most members in a village band ware a peaked hat, called gokkal, traditionally worn by a Buddhist monk. Those in a professional band ware a special hat with a long and thin tail usually made of goose leathers or papers in order to spin the hat to exhibit choreographical movements. Lastly, the village musicians play rather simple rhyth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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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지역에 따라 특징을 달리 하며, 하나의 문화영역 내에서도 다양한 문화요소에 의해 미세한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다. 한 문화영역 내에서 미세한 음악적 차이를 만드는 요소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 인 것 중의 하나가 음악가 집단이다. 예를 들어 농악에서 마을의 의식을 위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연행 되는 마을굿과 전문예술가 집단인 걸립패의 농악은 매우 다른 음악문화적 특징을 갖는다. 이렇게 농악 에서 음악가 집단의 성격에 의한 차이는 ‘두렁쇠/뜬쇠’의 농악 차이로 드러난다. 마을굿패에 끼기만 해도 사회적 천시를 받았던 전통사회에서 굿패의 상쇠는 뛰어난 음악적 기량뿐 만 아니라 한 집단을 이끌 수 있는 탁월한 지도력이 있어야만 한다. 또한 상쇠가 되는 것을 용인하는 사회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대부분의 뜬쇠 뿐만 아니라 두렁쇠들도 집안에 굿패의 일원이었던 부친 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가정적 배경으로 인해 이들은 상쇠가 될 수 있었던 사회적 용인이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쇠는 획득된 예술가라기보다는 생득된 예술가인 경우가 많다. 또한 가정적 배경으로 인해서 어린 나이에 농악에 노출되고 농악을 배울 수 있었던 계기가 전제된다. 이렇게 농악패 의 상쇠는 비록 직업적인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조건이 충족된 생득된 예술가인 것이다. 마을굿패와 걸립농악패의 차이는 치배의 편성이나 차림새에서도 드러난다. 마을굿패는 마을굿이라 는 민간신앙의식을 위한 집단이었기 때문에 신앙적 의미를 갖는 기(旗)를 중요시 여기지만, 걸립농악 패는 공연을 위한 집단이기 때문에 신앙성이 있는 기를 그다지 중요시 하지 않는다. 마을굿패는 마을굿 을 통한 주민들의 대동단결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를 북돋는 뒷치배(잡색)가 다수 편 성되지만, 걸립농악패는 공연자와 관객이 분리되기 때문에 뒷치배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을굿 패는 전문가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치배가 고깔을 쓰지만 걸립농악패는 화려한 기예를 보여 주기 위해 대부분의 치배가 전립을 쓰고 상모놀음을 한다. 음악적으로도 마을굿패는 자연태 가락을 연주하지만 걸립농악패의 음악은 훨씬 숙련된 가락을 연주 한다. 마을굿패의 음악은 무용동작을 맞추기가 어려운 불균등박자의 혼합박자 가락을 쉬운 균등박자의 가락으로 바꾸기도 한다.
목차
〈국문요약〉 Ⅰ. 내드름 Ⅱ. 두렁쇠와 뜬쇠의 비교 Ⅲ. 마을굿과 걸립농악 구성의 비교 Ⅳ. 마을굿과 걸립농악 음악의 비교 Ⅴ.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호남좌도농악마을굿걸립농악두렁쇠뜬쇠음악가 집단Nong'akFarmers' band musicVillage ritualMusicianshipAmateur/Professional Musicians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