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두 나라의 異國人假面戱와 ‘貢物 바치기’에 대한 비교 고찰
A Comparative Study on the Mask Dance Drama of Foreigners and “Granting a tribute to the emperor” in Korea and China 한중 두 나라의 이국인가면희와 ‘공물 바치기’에 대한 비교 고찰
In this paper, I carried out a comparative study on the history of the mask dance drama of foreigners and “Granting a tribute to the emperor” in Korea and China, and the results are as follow. First,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 dance of Ho(胡) and the dance of Lion were popular in both Korea and China, the mask dance drama of foreigners who grant a tribute to the Emperor in Goryeo(高麗) period could be begun with the influence of Ho-waves(胡流) also. Second, “Granting a tribute to the emperor” is intrinsically intended to beautify the ruler, so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both of the mask dance drama of foreigners in Korea and China. Third, considering the history of the mask dance drama of foreigners in China, the mask dance drama of foreigners who grant a tribute to the emperor in Korea was never a one-off play. It would have been performed repeatedly in Early Goryeo(高麗) period. But owing to the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be performed in late Goryeo(高麗) and Joseon(朝鮮) period, so it would not have been handed down. Forth, both of the mask dance drama of foreigners who grant a tribute to the emperor in Goryeo(高麗) and Ming(明) period are part of performing arts of sacred mountain such as Sandae (山臺) or Aoshan(鰲山). Because of this, they can be a keyword in writing the history of mask dance drama of East Asia. Fifth, “Granting a tribute to the emperor” in Goryeo(高麗) was the the mask dance drama on the Chaebung(綵棚), so it can be regarded as a form of the mask dance drama of the Sandae(山 臺). Based on this, I think this is the fastest documented case in the history of the mask dance drama of the Sandae(山臺). Currently, most of Korean researchers think that the mask dance drama of the Sandae(山臺) was formed in the 18th century. So my view will precipitate a new debate in the future.
한국어
본고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異國人假面戱와 ‘貢物 바치기’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비교 고찰 을 진행했고, 아래와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胡人이 주체가 된 胡舞나 獅子舞가 중국과 한국 모두에서 유행한 것으로 보아 高麗 시대의 ‘貢物 바치기’ 또한 胡流의 영향 아래 성립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貢物 바치기’는 기본적으로 통치자의 치세를 분식하기 위한 것이며 그런 각도에서 볼 때 중국과 한국의 '貢物 바치기'는 동일한 성격의 假面戱로 판단된다. 셋째, 중국의 경우를 고려했을 때 한국의 '貢物 바치기'도 결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高麗 전기에는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공연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高麗 후기부터 朝鮮시대 동안에는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貢物 바치기' 공연이 사실상 어려웠고 그래서 그것은 자연스럽게 失傳됐을 것이다.넷째, 高麗시대 異國人의 '貢物 바치기'와 明代 胡人의 ‘獻寶’는 모두 山臺와 鰲山이라는 神山을 배경으로 한 공연예술의 일종이므로 이런 점에서 향후 동아시아 假面戱의 역사를 그려내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다섯째, 高麗의 '貢物 바치기'는 綵棚 위에서 공연된 假面戱이므로 山臺假面戱의 일종으로 간주되는 것이 마땅하고 그래서 본고에서는 이것을 山臺假面劇의 역사에서 문헌으로 입증된 가장 빠른 사례라고 판단한다. 현재 한국학 연구자들은 대부분 山臺假面劇의 성립 시기를 18세기 무렵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본고의 이런 견해는 향후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목차
1. 序論 2. 중국의 異國人假面戱와 ‘貢物 바치기’ 1) 異國人假面戱와 ‘貢物 바치기’의 역사 전개 2) ‘貢物 바치기’의 의미 3. 한국의 異國人假面戱와 ‘貢物 바치기’ 1) 한국의 異國人假面戱 2) ‘貢物 바치기’의 사례와 성격 4. 結論 參考文獻 Abstract
한국중국어문학회 [The Society for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설립연도
1969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소개
韓國中國語文學會는 중국어문학을 연구, 소개하고, 연구자들의 학술교류를 활성화시키며, 회원 상호간의 친선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지난 1969년에 창립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중국어문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권위있는 학술단체입니다.
현재 250여명의 개인회원과 40개 기관의 단체회원이 등록되어 있으며, 기타 국내외 20여 개 기관과 학술적 성과를 교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1회 이상의 국제학술대회, 그리고 4회 이상의 국내 학술발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수시로 외국인 저명학자 초청 강연회와 학술세미나 등을 열고 있습니다.
韓國中國語文學會에서는 중국어문학에 관한 연구의 활성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1973년4월부터 매년 회원들의 연구논문을 싣는 학회지 <中國文學>을 현재 제 35집까지 발간하였으며, 회원들의 연구가 활발해지고 그 성과가 늘어남에 따라 1996년부터는 매년 2회로 발간 회수를 늘렸습니다. 매 권당 약 400면의 분량으로 발간되는 <中國文學>은 한국 중국어문학계에서 가장 내실있는 연구성과만을 모은 학술지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비단 중국어문학 뿐만 아니라 국문학, 동양사학, 철학, 미학 등의 분야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학술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중국문학 [THE CHUNG KUK MUN HAK ; Journal of Chinese Liter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