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8th century, Neo-Confucianism was reinforced as the ruling ideology by confucian aristocrats in Korea. But Korean people, wishing to solve the unreasonable social problems, accepted new religion concepts rather than neo-confucianism. Catholicism spreaded at the end of 18th century and Donghak advocated in the middle of 19th century. Both were popular religious movement at that time. Western Learning of Catholicism was understood as an idea of equality because it emphasizes the human dignity. Donghak claimed Sa-in-yeo-cheon(事人如天) which was understood as one must respect every human being like heaven. It was the manifest of human dignity and the criticism to unequal status. Korean people who suffered from decriminalize social system accepted both of Catholicism and Donghak. But the government, regarding them as heretical doctrine, prohibited and suppressed both of them. These two ideas have not only a little similarity but also lots of difference. Catholicism recognized universality of human being and of human value. But Donghak reinforced anti-Catholicism and anti-western ideas originated from Choe Jewoo because of invasion of imperialism to Korea at the end of 19th century. Since 1890, as the invasion of imperialism became more actual, Donghak movement was getting more popularity. Donghak association leaded anti-imperialism or anti-western movement. Donghak believers' such tendency became anti-catholic movement. So during the Donghak peasant war of 1894, Catholic churches of Cholla-province were severely damaged concluding murder of french missionary by Ching Chinese army. So Catholic Church was hostile to Donghak for long time.
한국어
19세기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의 극복을 염원하던 민중들은 성리학 자체에 대한 거부의 의사를 견지하면서 새로운 사상운동에 투 신해 갔다. 그들은 이 사상운동을 통해 상호 결속하며 사회의 변혁을 지향하였다. 이 과정에서 18세기 말엽 서학 즉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 었고, 19세기 중엽에 동학사상도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양자는 모두 민중종교운동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서학은 조선후기 19세기 전후의 사회에서 傳播되었다. 이 사상은 인간 존엄성을 강조했고, 일종의 평등사상으로 인식되었다. 19세기 중 엽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에서도 ‘事人如天’을 주장했다. 이는 班常이 나 嫡庶의 차별, 남녀노소, 빈부의 차별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을 하 늘처럼 받들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또한 이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 한 선언이었고, 신분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뜻했다. 이 두 사상은 모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자각으로, 당대 민심이 지향하던 소망을 수렴한 사상이었다. 서학과 동학은 모두 불평등한 사회제도로 인해 피해를 강요당하던 민중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동학과 서학 모두 邪學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발생초기부터 이를 탄압했다. 서학과 동학은 상호간 약간의 유사점을 가지고 있으나, 그 차이점 도 컸다. 즉, 서학은 인간의 보편성과 함께 문화 내지는 가치의 보편 성을 인정하던 입장이었다. 반면에 동학은 조선사회가 처해 있던 19 세기 후반 朝鮮의 상황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대응책을 찾고 자 했다. 그리하여 동학은 최제우 단계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反서학적, 反서양적 사상을 더 욱 强化시켰다. 帝國主義의 侵略이 强化됨에 따라 동학운동은 더욱 활기차게 전개되었다. 동학은 反침략운동 내지 는 反서양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동학도들이 가지고 있던 이러한 경향은 反천주교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리하여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의 과정에서 전라도 지역의 교회는 동학농민군들로부터 적지 않은 被害를 당했다. 이 상황에서 천주교측은 동학에 대한 부정 적 인식을 상당 기간에 걸쳐 가지게 되었다.
목차
Ⅰ. 서론 Ⅱ. 서학의 민중종교운동적 특성과 그 변질 Ⅲ. 동학의 창도와 서학에 대한 인식 Ⅳ. 동학의 조선중심적 성격 Ⅴ. 동학농민전쟁과 천주교 Ⅵ. 결론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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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동학에 대한 학제 간 학술연구 및 학술발표와 회원간의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