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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영 영관 이두황과 보은 장내리 파괴
Jangwiyeong(壯衛營) field officer Lee, Doohwang(李斗璜) and pull down of Boeun Jangnaeri(報恩 帳內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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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학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학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8호 (2013.08)바로가기
  • 페이지
    pp.7-57
  • 저자
    홍일교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96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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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Lee, Doohwang(李斗璜) was commissioned junior officer in 1882, a local public service officer in 1889, and senior officer in 1890 of Jangwiyeong(壯衛營). Lee, Doohwang had participated for the suppression of the 1st DONGHAK Peasant Revolution(東學農民革命) as a senior officer of Jangwiyeong in 1894, and even for First Sino-Japanese War(淸日戰爭) after then. It seemed that Lee, Doohwang was deeply impressed from victories of Japanese force during the battle between the force of Chung dynasty and them, those had been regarded they were much more stronger then Japanese force themselves. This experience would have led him to showing more cooperative attitude with Japanese force during the suppression to 2nd DONGHAK Peasant Revolution. As Lee, Doohwang cooperated 2nd DONGHAK Peasant Revolution, his first action before moving was gathering information, increasing his force. It was his suggestion to attack and suppress the DONGHAK stationed in Boeun Jangnaeri(報恩 帳內理), regarded as a heart of Donghak force, with Seong, Hayoung(成夏泳), the governor of Anseong, and Lee, Janghoe(李長會), the millitary officier of ChungCheong(忠淸兵使). The pull down of Jangnaeri was had a great meaning for everyone, since it was the command center of DONGHAK. The collapse of Jangnaeri, the central place for Donghak, had given them tremendous frustration, especially to the North DONGHAK force those had lost the base to return. And for Lee, Doohwang, it was the beginning of the suppression of 2nd DONGHAK Peasant Revolution. The force of Lee, Doohwang had suppressed Donghak force in Mokcheon, Seosan, Gongju and Yugu and won the battles, yet not engaged in the war of Ugeumchi(牛金峙). It was the result of performing Yanghodosunmuyeong(兩湖都巡撫營)’s order, not avoiding the battle by his own intention. The Japanese force and his troops had scouted around whole area of Jeollado(全羅道) and arrested many of DONGHAK force, those were captured and being executed by firing squad in December 30th, 73 out of 94, near the base camp of Japanese force. The suppression to DONGHAK force in Daedun Mountain, on the middle of the way to Seoul, the last DONGHAK force the warfare was happened after the execution.
한국어
李斗璜은 1882년 무과 급제 후 하급 장교로서 활동하였으며, 1889년에는 지방관으로 임명을 받아 활동하였으며, 1890년 壯衛營 대관으로 임명받는다. 이두황은 1894년 장위영의 대관으로 제1차 東學農民革命 진압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淸日戰爭에 참전하게 된다. 이두황은 일본군이 그들보다 전력이 더 강하다고 평가를 받는 청군과의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군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험은 제2차 동학농민혁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그가 일본군의 지시를 잘 따르게 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제2차 동학농민혁명 진압에 참여한 이두황은 먼저 정보수집과 병력 증강 등 사전 준비를 한 후 부대를 이끌고 출발한다. 이두황은 먼저 안성군수 成夏泳, 충청병사 李長會와 함께 동학 교단의 중심지인 報恩 帳內理의 동학농민군을 진압할 계획을 논의하였다. 14일 보은에 도착한 이두황은 동학교단의 본부인 보은 장내리를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이러한 보은 장내리의 파괴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장내리는 동학의 본부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장내리의 파괴는 동학의 본부가 파괴된 것이다. 따라서 보은 장내리의 파괴는 동학교도들에게 본부가 파괴되었다는 상실감을 주었고, 특히 북접 동학농민군들에게는 전투 후에 돌아갈 수 있는 근거지가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두황의 보은 장내리 파괴는 2차 동학농민혁명의 본격적인 진압을 알리는 신호였다. 보은 장내를 파괴한 후 이두황은 목천, 서산, 공주 유구 등 여러 지역에서 동학농민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하지만, 공주 우금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두황이 전투를 피한 것이 아니라, 양호도순무영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이다. 이두황은 일본군과 함께 전라도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동학농민군들을 체포하는데, 12월 30일 체포한 동학농민군 94명 중 73명을 일본군 진지 앞에서 사살한다. 그리고 서울로 복귀하는 중에 최후까지 저항하던 대둔산의 동학농민군을 진압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이두황의 이력과 제1차 동학농민혁명 진압
  1) 개항 이후 조선의 군제개편
  2) 이두황의 관직 이력과 제1차 동학농민혁명 진압
 3. 청일전쟁과 제2차 동학농민혁명 진압 준비
  1) 청일전쟁 참가
  2) 동학농민혁명 진압 준비
 4. 이두황의 보은 장내리 파괴와 제2차 동학농민혁명 진압
  1) 보은 장내리 파괴
  2) 제2차 동학농민혁명 진압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이두황 장위영 청일전쟁 보은 장내리 파괴 동학농민혁명 진압 Lee Doohwang Jangwiyeong(壯衛營) First Sino-Japanese War(淸日戰爭) pull down of Jangnaeri(帳內理) suppression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東學農民革命)

저자

  • 홍일교 [ Hong, Il-kyo | 독립기념관 학예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학학회 [The Donghak Society]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동학에 대한 학제 간 학술연구 및 학술발표와 회원간의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학학보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7566
  • eISSN
    2713-3605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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