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3, 1894. The Bukjob-Peasant Army started marching toward Gongju(公州), which was then the state capital of Chungcheong–do. They fought against the Japanese army and the capital defense forces in many battles. The Bukjob-Peasant Army suffered a crushing defeat in the Ugemchi(牛禁峙) battle. This was a fatal blow to them, and they were forced to retreat. The Japanese, however, continued to chase, and the Peasant Army suffered repeated defeats from Nonsan(論山) to Taein(泰仁) where was the recession continued. Choi si-hyeong, the leader of the donoghak movement, was accompanied by the Bukjob-Peasant Army from Imsil(壬實) district. From this point on, Donghak, a religious group, was fairly identified as the Bukjob-Peasant Army. In Muju(茂州) district, the anti-donghak militia was obstructed the Army's march. The muju anti-donghak militia was easily defeated by the Bukjob-Peasant Army. They arrived at the hometown Yeongdong(永同) district at a bad time. The attackers had been descending one after another. At last, they went into a battle in Yongsan(龍山) marketplace. The day was December 13, 1894. The attackers consisted of three groups; a unit of capital defense forces, a military unit of Chungcheong-do, and Okcheon(沃川) anti-donghak militia. The combat ended in a victory by the Bukjob-Peasant Army. They showed a glimpse of their real fighting skills which were acquired in combats at the Gonju, Yonsan(連山), Nonsan, Wonpyong(院坪) and Taein.
한국어
북접농민군은 1894년 10월 23일 공주로 행군하여 우금치전투에 참가한 후 논산과 연산 그리고 원평과 태인전투에서 밀려난 다음에 전라도 일대에서는 갈 곳이 없었다. 일본군과 경군을 피해 장성으로 남하한 뒤 출발지인 충청도로 귀환하기로 결정하였다. 임실에서 교주 최시형을 만난 후 12월 1일 장수와 무주로 함께 북상하였는데 이에는 일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동학 교단의 핵심부가 북접농민군의 지도부에 참여해서 북접농민군과 교단이 동일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는 북접농민군의 행군로에 관한 정보를 알지 못했고, 그 때문에 북접농민군은 추격을 피해 행군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경상도에서는 장수와 무주에 들어온 북접농민군이 도의 경계를 넘어올 것을 우려해서 남영병을 파견해서 요충지를 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북접농민군은 계속 북상하여 무주에서는 설천과 월전에서 무주 민보군과 전투를 벌여서 이들을 물리쳤다. 북접농민군은 여러 차례의 전투경험을 통해 민보군을 상대하는 전투에서는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하였다. 충청도로 돌아온 뒤 용산장터에 주둔했던 동학농민군은 경군 경리청과 충청병영의 남영병 그리고 옥천 민보군의 공격을 받게 된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정예병인 경리청과 남영병은 북접농민군의 반격을 받아 패배하였다. 상주 소모영의 유격병이 후방 공격도 막아낼 수 있었다. 북접농민군이 이들을 물리친 것은 전과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 것이었다. 여러 차례 전투를 경험한 북접농민군은 공주로 출진하기 전보다 강력해진 전투력을 갖게 된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교주 최시형의 합류 및 장수 점거 3. 경상도 군현의 대비와 북접농민군의 무주전투 1) 경상도 지역의 북접농민군 대비 2) 북접농민군과 무주전투 4. 북접농민군의 영동 용산전투 5.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북접농민군회군장성 갈재임실최시형무주전투용산전투경리청남영병옥천민보군The Bukjob-Peasant Armya withdrawalImsilChoi si-hyeongMuju anti-donghak militiaMuju battleYongsan battlecapital defense forcesa military unit of Chungcheong-doOkcheon anti-donghak militia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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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