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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學敎團과 (合同)一進會의 일본 유학생 파견과 '斷指同盟'
Dispatch of Students Studying in Japan and 'Danji Strike' by the Donghak and the (united)Ilchinhoe
동학교단과 (합동)일진회의 일본 유학생 파견과 '단지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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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학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학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2호 (2011.08)바로가기
  • 페이지
    pp.163-211
  • 저자
    이용창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96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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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Around the Protectorate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on Nov. 1905, the students were steadily sent abroad by the religion organization with the increase of the students studying abroad in their own money. Especially Donghak sent the students to Japan by Eui Am Sonbyonghui who stayed there. Also many students were dispatched abroad after the organization of (united)Ilchinhoe between the Chinbohoe which was the people's organization of Donghak and pro-Japanese Ilchinhoe. ‘Danji Strike’ was that 21 ones among 32 students who stayed on Jan of 1907 protested in the letter written in their blood by cutting their little finger. They were sent by both the Donghak and the (united)Ilchinhoe. On Sep. of 1906 the (united)Ilchinhoe was divided into Chondokyo and Ilchinhoe. In the process from March(or July) to Dec., both organization had stopped the school expenses and living expenses for students. The students who suffered from the grim realities of life carried out ‘Danji Strike’. As this incident became known to the Korean residents abroad including Japan as well as to Korea, the supervisory agent to these students who participated in ‘Danji Strike’ was the center of attention. Also it led to the fund-raising for them and the measures by the Korean government were asked. There is a limit to clarify who was responsible for the incident because the position of the Donghak was contrary to that of Ilchinhoe. Chondokyo was to blame to some extent. But the public criticized the Ilchinhoe on account of its pro-Japanese activities. In this thesis, I reviewed the dispatch process and scale of the students studying in Japan by the Donghak and the (united)Ilchinhoe. But it was much limited to examine the realities by the document of two organizations. Until now I identified total number 52 students studying in Japan by the name list(28 and 24 by each organization) and 21 students' activities after they participated in 'Danji Strike' which caused the social concern. However, there are some remaining subjects such as how the measures to that incident were executed after 'Danji Strike' and how 21 students finished their studying under what condition etc..
한국어
1905년 11월 ‘을사늑약’ 전후로 私費留學生의 증가와 함께 종교단체 등에서 일정한 목적으로 파견하는 ‘貸費유학생’들도 꾸준하게 이어졌다. 특히 동학교단은 일본에 체재 중이던 의암 손병희의 주도로 일본에 유학생을 파견하였다. 또 동학교단의 민회조직인 진보회와 친일단체 일진회가 (합동)일진회로 합쳐진 후에도 다수의 유학생이 파견되었다. ‘단지동맹’은 동학교단과 (합동)일진회가 파견했던 유학생 중 1907년 1월 당시까지 남아있던 32명 중 21명이 손가락을 잘라 혈서로 항의한 사건이다. 두 단체의 결합으로 조직된 (합동)일진회는, 1906년 9월에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와 일진회로 다시 분립했다. 이 과정에서 재정적인 문제와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같은 해 3월(또는 7월)부터 12월까지 일본 유학생들에게 지급해야 할 학비와 생활비를 중단함으로써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21명의 유학생들이 ‘단지동맹’을 결행한 것이다. ‘단지동맹’의 충격적인 소식이 국내는 물론 일본을 비롯한 해외의 동포들에게 알려지면서 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이 이어졌고, 한국정부의 유학생 관리․처우 등에 대한 대책도 요구되었다. 이와 함께 ‘단지동맹’에 참여한 유학생들의 감독 주체를 둘러싸고 관심이 집중되었다. 동학․천도교단과 통칭 ‘일진회’가 주장하는 입장은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천도교단 측의 책임도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일반적인 반향은 주로 ‘일진회’가 친일행적의 前歷이 빌미로 작용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동학교단과 (합동)일진회가 일본에 유학생을 파견하는 과정과 규모를 살펴보았지만, 두 단체가 남겨 놓은 기록으로는 실체를 규명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었다. 현재까지 명단으로 확인되는 유학생의 규모는 각각 28명과 24명, 총 52명이라는 것과, 사회적으로 관심을 일으켰던 ‘단지동맹’에 참여한 21명의 행적, 그리고 사회적인 반향이 어떠했는지 등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동학교단과 (합동)일진회 시기에 파견된 유학생들의 정확한 명단 확인과, 두 단체에서 유학생을 파견한 정확한 시기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또 ‘단지동맹’이 결행된 후 한국 정부와 감독 관청인 學部가 유학생 전반에 대해 제도적인 정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동맹’에 참여한 학생들을 어떻게 조처했는지, 그리고 이 학생들이 이후 일본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등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동학교단의 일본 유학생 파견
  1) 유학생 파견 과정
  2) 유학생의 규모
 3. (합동)일진회의 일본 유학생 파견
 4. ‘단지동맹’의 발단과 경과
 5. ‘단지동맹’에 대한 사회적 반향과 대책
  1) 사회적 반향과 책임 공방
  2) 대책 마련의 방향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동학교단 손병희 천도교 진보회 단지동맹 혈서 일본 유학생 파견 Donghak Sonbyonghui Chondokyo Chinbohoe ‘Danji Strike’ Letter written in blood Dispatch of students studying in Japan (합동)일진회 (united)Ilchinhoe

저자

  • 이용창 [ Lee, Yong-Chang |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학학회 [The Donghak Society]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동학에 대한 학제 간 학술연구 및 학술발표와 회원간의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학학보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7566
  • eISSN
    2713-3605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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