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남원대도소의 9월봉기론과 김개남군의 해산배경
The insistence of the uprising of September 1894 of the Namwon headquarters and the dissolution background of the Donghak Peasant Army under the command of Kim Gaenam
Kim Gaenam is the one of the top ranked leaders of the Donghak PeasantArmy. Namwon, Jeolla Province were the base of the Kim Gaenam. The studyabout him had been done scarcely compared to the other leader like JunBongjun. There are relatively rare data about him. Kim Gaenam, the leader of the Namwon Headquarters insisted to the armeduprising since September, 1894. He thought that if the decision of uprisingshould not depend on the result of the First Sino-Japanese War. He said that itis difficult to reconvene a disbanded military during the harvest season. The troops commanded by Kim Gaenam were violent. To kill a governmentofficial was a taboo for the Koreans, but the troops of Kim Gaenam fearlessnesskilled several bureaucrats. The biggest problem to inhabitants of Namwon wasrecklessly getting the expenses of the war. Furthermore, the Kim gaenam troopswas violent to residents of the marching area when they walking down a grainand money. Military spending was obviously needed, but it brang the lost of thesupport of its people. The troops commanded by Kim Gaenam was defeated while attackingCheongju. They had to rolled back and was dissolved. Since then, they weredisappeared from the history.
한국어
김개남은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김개남은 수많은 동학농민군을 거느리고 전라도 남원에거점을 두고 활동하였다. 그 위세는 마치 왕을 스스로 칭하고 있는 것처럼 대단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져 있지 않다. 김개남에 관한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개남이 거느린 남원대도소는 유일하게 9월부터 무장봉기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다른 지도자들과 차별이 되는 주장은 바로 이와 같은 조기봉기론이었다. 김개남은 농민으로 이루어진 동학농민군이 일단 해산하면 다시 모이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청일전쟁의 결과를 보고 재봉기를 결정하는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전봉준 등 다른 지도자는 이에 대해 반대하였고 그의 주장은 수용되지 않았다. 재봉기한 이후에도 김개남 군은 전봉준 군에 합세하지 않았다. 전봉준 군이 공주 우금치를 공격할 때에도 청주를 점령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김개남군은 청주에서 패배하고 후퇴 하였다. 그 후 역사에 그들의 활동은 다시나오지 않는다. 김개남 군은 난폭하였다. 정부 관료도 함부로 죽였고, 남원 지역 주민들에게 전쟁 경비 마련을 위한 곡식과 돈을 거둘 때도 난폭하였다. 행군할 때 지나가는 마을에서도 거칠게 행동했다. 그 결과 인심을 잃게 되었고, 해산한 뒤 재기를 할 수 없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김개남과 남원대도소의 9월봉기론 검토 3. 김개남군의 청주성 공격과 해산 4.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김개남동학농민군남원대도소9월봉기청주전투해산Kim Gaenamthe Donghak Peasant Armythe Namwon Headquartershe armed uprising since Septemberthe Battle of Cheongju. dissolution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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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