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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최시형의 서소문 옥중 생활과 처형 과정
Imprisonment at Seosomun and Execution of Master Haeweol Choe Si-H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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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학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학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8호 (2016.03)바로가기
  • 페이지
    pp.57-86
  • 저자
    윤석산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93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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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Master Haeweol Choe Si-Hyeong (1827~1898) was the 2nd founding leader of Donghak. After the decapitation of the Great Master Su-un Choe Je-u (1824~1864) by the government, Choe Si-Hyeong chose to live in 50 different mountainous areas. Some of these areas were deep within the Taebaek and the Sobaek Mountains. He was not in the mountains hiding from the world. While he was there, he grew the Donghak organization nation-wide by reestablishing the Donghak Order. With the huge force of the Order behind him, he initiated and led the Donghak revolution of 1894. This made him a polarizing figure and resulted in him being targeted and hunted by the authorities. After four years of being chased by the authorities, Choe Si-Hyeong was finally arrested on April 5th of 1898 in Songgol, Wonju at the home of his disciple, Won Duk-yeo, and was sent to Seoul. He was first imprisoned at the government office, and later spent a month and half in the Seosomun prison until he was sentenced by the High Court. Following the High Court’s ruling, he was moved to their execution ground on June 1st 1898. He was executed by hanging the next day, June 2nd, 1898. Four days after his execution, his disciples buried him at Gwangju in Gyeonggi province. Sometime after, his grave was moved to the Wonjeok Mountains in Yeoju, Gyeonggi province where it remains today. Seosomun prison, which is near the Seosomun execution ground where Master Haeweol spent the last days of his life, was also where many other historical figures lost their lives as well. Seosomun prison has become a historically meaningful location as a result of those events.
한국어
해월(최시형, 1827- 1898)은 동학의 2세 교주이다. 스승인 수운(최제우, 1824 – 1864)이 조정에 의하여 참형을 당한 이후, 36년 간 우리나라의 가장 오지 지역인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어우러지는 산간 마을 50여 군데를 전전하며 살았다. 그러나 다만 숨어서 산 것만이 아니라, 동학교단을 재건하여 전국적인 조직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커다란 힘과 함께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을 이끌게 되었고, 갑오동학농민혁명의 주역으로 관의 추적을 받았다. 1898년 4월 5일 원주 송골에 있는 제자 원덕여의 집에서 관군에게 체포가 되어 서울로 압송이 되었다. 처음에는 경무청에 수감이 되었다가, 서소문 형무소에 수감이 되어 한 달 보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고등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고등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1898년 6월 1일 고등재판소 사형장으로 옮겨 수감이 되었고, 다음 날이 6월 2일 교수형이 처해졌다. 교수형이 처해진 이후 사흘이 지나 제자들에 의하여 경기도 광주에 매장이 되었다가, 훗날 오늘 묻혀 있는 경기도 여주 원적산으로 이장이 되었다. 해월이 한 달 보름 동안 수감되어 있던 서소문 감옥서는 서소문 사형장 일대로,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처형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서소문 감옥서는 해월의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을 한 곳으로, 그 의미가 남다른 곳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글을 열며
 2. 동학 선생 해월
 3. 송골에서 체포
 4. 압송과 구금
 5. 해월, 천덕봉에서 그 고단한 몸을 뉘이다.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해월 갑오동학농민혁명 원주 송골 서고문 형무소 고등재판소 사형장 Haeweol The Donghak revolution of 1894 Songgol Wonju Seosomun prison High Court execution ground

저자

  • 윤석산 [ Suk-San Yoon | 한양대 명예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학학회 [The Donghak Society]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동학에 대한 학제 간 학술연구 및 학술발표와 회원간의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학학보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7566
  • eISSN
    2713-3605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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