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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대 한성판윤의 특징과 변화(1863~1907)
The characteristic of Seoul Mayor and Change in King Ko-Jong(1863~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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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서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5호 (2016.11)바로가기
  • 페이지
    pp.171-224
  • 저자
    장경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9353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thesis analyzes Seoul Mayor’s family clan, the age, incumbency, their job and many works when they were in Seoul Mayor in the King Ko-Jong. The percentage of Andong Kims clan was high during the regency and that of Yeoheong Mins clan was high during his own reign. Specially, Jeonjoo Lees clan were repeatedly appointed to Seoul Mayor and their incumbency was long before the Gabo Reform of 1894. Above this there were Byun Won Kyu and Lee Seung Oh who was the envoy of Qing. They became Seoul Mayor during the Qing intervention period. There were big changes after the Gabo Reform of 1894. To be specific, The Andong Kims clan, Yeoheong Mins clan, Jeonjoo Lees clan was the main family clan before the Gabo Reform. But Seoul Mayor was a man of obscure birth after the reform. Furthermore their incumbency was doubled when comparing the Seoul Mayor before the Gabo Reform. Their age was younger than before the Gabo reform. Younger Seoul Mayor such as Ye Cha Yeon worked many things for Seoul. For instance, they tried to find solution of conflict between Korean and Foreigner and worked for Hansung City Improvement Project. Sometimes they rejected foreigner’s excessive demand. However, there were no their own decision after the Protectorate Treaty of 1905.
한국어
이 글에서는 고종대(1863~1907)의 한성판윤의 명단을 본관, 취임 당시의 나 이, 재임기간, 재직 전후 관직 등을 분석하고, 더불어 그들의 재임 기간에 한성에 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고종 친정 이전에는 안동김씨가, 고종 친정 이후에는 여흥민씨가 주로 한성판 윤을 맡았다. 그런데 전주이씨는 갑오개혁 이전 전 시기에 걸쳐 한성판윤을 맡았 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주이씨는 한성판윤에 자주 임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임기간도 길었다. 이 외에 한성판윤에 여러번 임명된 인물들 중에서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변원규와 이승오를 들수 있겠는데, 이들은 청나라의 간섭이 가속화 되던 시기에 자주 재임했던 인물들이다. 고종대 한성판윤은 갑오개혁 전후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전주이씨, 안동김씨, 여흥민씨가 주도하던 갑오개혁 이전과는 다르게 이 시기의 한성판윤 은 그 출신이 불분명하거나 양반이 아닌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이들의 평균 재 임기간은 이전 한성판윤 보다 2배 길었고, 평균 연령대도 10세 이상 젊은 인물 들 이었다. 이채연을 비롯한 젊은 한성판윤들은 재임하면서 외국인과의 갈등 처 결, 도시개조사업, 법률문제해결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했다. 때로는 외국의 부당 한 요구에 맞서 대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을사늑약이후 한성판윤의 직임은 낮아지고 독단적인 대처를 찾아볼 수는 없게 되었다.

목차

I. 머리말
 II. 고종대 한성판윤의 위상
 III. 갑오개혁 이전의 한성판윤과 특징(1863~1894)
  1. 고종 친정 이전의 한성판윤과 특징
  2. 고종 친정 이후의 한성판윤과 특징
 IV. 갑오개혁 이후의 한성판윤 성분과 역할 변화(1894~1907)
  1. 한성판윤 성분 변화
  2. 한성판윤의 역할 변화
 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부록>

키워드

한성판윤 안동김씨 전주이씨 여흥민씨 갑오개혁 Seoul Mayor Andong Kims clan Jeonjoo Lees clan Yeonheong Mins clan Gabo Reform of 1894.

저자

  • 장경호 [ Chang, Kyoung-ho | 서울역사편찬원 전임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The Institute of Seoul Studies]
  • 설립연도
    1993
  • 분야
    사회과학>지역개발
  • 소개
    서울학연구소는 ‘서울학’을 육성, 확산하기 위해 서울 600년을 계기로 하여 1993년 서울특별시의 지원 아래 서울시립대학교 부설로 설립되었습니다. 서울학의 연구대상은 도시 서울입니다. 서울학은 서울의 장소, 사람, 일, 문화를 만들어내고 변화시키는 과정과 힘을 탐구하여 서울이 지닌 도시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서울학여느 종합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학제적 연구를 지향합니다. 서울에 대한 여러 기성학문 분야(역사학, 지리학,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건축 및 도시계획학등)의 연구관심과 성과가 상호조명되고 교차되는 데에 서울학에 영역이 있습니다. 서울학의 학문적 관심은 오늘의 서울을 만들어낸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있지만, 그 실천적 관심은 현재의 서울에 대한 심화된 성찰을 통해 보다 나은 서울의 미래를 그리는데에 있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서울학연구 [The Journal of Seoul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225-746X
  • 수록기간
    1994~2018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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