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article is about the research for the dignity of modern Woonmun monastery which gained great fame as the educational ground of Bhiksuni. And also, I illustrated the educational method and ideology of the great buddhist monk, Myeongseong(眀星) who boosted and made up the dignity of modern Woonmun monastery. The Woonmun monastery is the old temple with a long history of about 1400 years, since its establishment at the Silla period. In this history, it gained fame as the temple of Seon school in the time of Goryeo, with the feature of the cardle of the Silla chivalry that Dharma teacher Wongwang led in the Silla period. However, its fame markedly declined after the Joseon period. Since 1955, the Woonmun monastery became the center of Buddhist nuns' temples and Sangha education as passing through the Buddhist purification movement. Since the 1970s, the reverend Myeongseong has taken in charge of a lecturer and abbot. For many decades, she reformed and rebuilt the monastery for making today's Woonmunsa. That is, the reverend Myeongseong became the fifth ower of reestablishment. The reverend Myeongseong who created such a history strived for Buddhist nun's education as proceeding the open, doctrinal, healthy education. This was the modernization and the globalization of education coming from the wish to make Buddhist nuns as talented persons. Such the reverened Myeongseong's educational philosophy can be called Buddhist Humanial Spirit(人文精神). But this feature may come from the influence by teacher reverends who taught the Myeongseong. The teacher of those reverends was Park Hanyeong. He was the great master who opened a buddhist school at Gaewoonsa in Seoul from 1926 to 1944, and taught monks and intellects. His buddhist academic tradition and humanial spirit were succeeded to Myeongseong, so her educational philosophy was able to be the buddhist humanial spirit with histor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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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찰은 비구니 교육도량으로 명성이 높은 雲門寺의 현대기의 寺格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핀 글이다. 동시에 이 글에서는 현대 운문사 사격을 고양, 정립시킨 비구니 큰스님인 眀星의 교육 내용, 이념 등을 정리하였다. 운문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14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고찰이다. 이런 역사에는 신라기의 원광법사가 주도한 화랑의 수행처 라는 성격과 함께 고려시대에는 선종 사찰의 명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사세가 퇴진하였다. 그러나 불교정화운동을 거치면서 1956년부터 비구니 사찰과 비구니 승가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1970년대부터 운문사 강주, 주지를 역임한 명성은 수십여 동의 가람을 중수, 신축하면서 오늘날의 운문사를 만들었다. 즉 명성은 제5중창주가 되었다. 이런 역사를 창조한 명성은 開放, 兼學, 立體的 교육을 추진하면서 비구니 교육에 매진하였다. 이는 비구니들을 인재로 양성하려는 원력에서 나온 교육의 현대화, 세계화이었다. 이런 명성의 교육철학은 불교 人文精神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그 성격은 명성에게 가르침을 준 師僧들의 영향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었다. 그 사승들의 은사는 박한영 이었다. 박한영은 1926∼1944년까지 서울 개운사에서 강원을 열면서 승려, 지식인 등을 가르친 대강백이었다. 때문에 그의 불교학풍, 인문정신이 명성에게까지 계승되었다. 때문에 명성의 교육철학은 역사성이 있는 불교 인문정신이었다.
목차
한글요약 Ⅰ. 서언 Ⅱ. 운문사 寺格의 상승과 명성의 佛事 Ⅲ. 명성의 사상과 불교 인문정신 Ⅳ. 결어 참고문헌 Abstract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