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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교황 요한 22세가 보낸 편지에 나오는 Regi Corum은 고려의 충숙왕인가?
Can Rex Corumbe King Chungsuk of Go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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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수원교회사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교회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13호 (2016.12)바로가기
  • 페이지
    pp.129-163
  • 저자
    안재원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9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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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possibility whether Regi Corum mentioned in the letter from the Pope John the 22nd is to be identified as King Chungsuk of Goryeo. My conclusion is negative, based on two evidences. First, it is hard to find any evidence in the letter in question to support that Regi Corum refers to King Chungsuk. For example, grammatically to see, the nominative plural case of Corumis Corior Cithat sounds very close to Khitan. The Khitanis also related to Chigista. In this regard, one can provide another reading that Chigista might be a misspelling of Chingista. Second, no external evidences exist that allow us to interpret Regi Corum as King of Goryeo. There should be at least three respects to support such interpretation. First, there should be historical materials to varify that there existed de facto a number of Christians in Goyreo. Second, according to my reading, the letter of Pope John XXII was to be regarded as a pass that vouched a safe journey from Avignon to Kanbaliq. If this is the case, Corum should be located between Avignon and Kanbaliq and Goryeo was too far to the East to be a candidate. Finally, Goryeo used to be known to Europe by two names by medieval authors: Cauleand Solangi.
한국어
교황 요한 22세가 보낸 서신에 나오는 Regi Corum은 과연 고려의 충숙왕이었을까? Regi Corum은 고려의 충숙왕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결정적이다. 하나는 Regi Corum을 고려의 충숙왕으로 읽기 위해서는 문헌학적인 관점에서 텍스트의 내적 증거들이 요청되는데, 그 증거들이 서신 내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요컨대, Corum의 문법적인 형태를 고려해 볼 때, Corum은 Ci이고 이는 Khitan에 더 근접해 있으며, Khitan은 그런데 Chigista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Sece de Chigista를 Seecede Chingista로 읽을 수 있다. 이 경우도 고려와는 무관하다. 다른 하나는 텍스트의 외적 증거가 없다. 필사본의 Regi Corum이 고려인들의 왕이라면, 역사적으로 고려에 그리스도교도들이 오래전 있었고 그 수가 많았음이 입증되야 한다. 이에 대한 문헌 기록이 없다. 또한 니콜라우스 대주교가 칸발리크로 가는 여정 가운데에 고려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요한 22세의 서신은 실은 아비뇽에서 북경으로 가는 여정에서 여행의 안전을 보장하는 통행증이었다. 그러기에는 고려는 지리적으로 극동에 위치해 있다. 마지막으로, 이미 14세기에 통용되었던 고려의 명칭이 있었다. 몽고어로 Solangi 혹은 한자어로 Caule가 그것들이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필사본의 Regi Corum을 “고려인들의 왕” 으로 읽을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Regi Corum은 고려의 충숙왕으로 읽을 수 없다. 이 주장의 성립을 위해서 요청되는 내적 증거이든 외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문제 제기
 Ⅱ. 문헌 판독 및 비판 정본
  1. 비판정본(editio critica)
  2. 문헌 번역
  3. 문헌 주해
 Ⅲ.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충숙왕 고려 요한 22세 니콜라우스 알말리크 세케 키지스타 칸 발리크 King Chungsuk Goryeo Pope John XXII. Nicolaus Almaliq Sece Chigista Khanbaliq

저자

  • 안재원 [ Ahn, Jaewon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 설립연도
    2003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5377
  • eISSN
    2713-6027
  • 수록기간
    200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36 DDC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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