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 지역이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진산 사건의 발생지이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산은 진산 사건만으로 의미있는 지역이 아니다. 이곳은 박해시대 이래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삶의 터전이며, 오늘날까지 신앙이 유지되는 곳이다. 따라서 진산 지역의 신앙사는 진산 사건뿐만 아니라 진산에 살았던 신자들의 모습이 아울러 밝혀질 때, 온전한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준비되었으며, 특히 개화기(1876~1910)에 진행된 신앙공동체의 변화 모습을 정리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진산 지역의 신앙공동체는 1787년경에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1791년 진산 사건이 발생하면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하였다. 진산 사건 이후 이곳의 신앙공동체는 더 이상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신유박해 이후 기해박해 이전의 시기에 다시 등장하며, 가새벌, 문바위, 진밭들, 청림, 오항골 등이 신자들의 거주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공동체도 병인박해로 와해되었다. 전라도에 대한 전교는 1877년 블랑 신부에 의해 재개되었고, 이즈음 진산의 가새벌 공소가 복구되었다. 그리고 〈1884~1885년 교세 통계표〉 에 진산 지역의 공소가 처음으로 기록된다. 이후 1910년까지 진산 지역은 6명의 성직자가 담당했는데, 이 기간 동안 진산의 신앙공동체는 “재건 → 발전 → 확대 → 시련 재편” 이라는 변화를 보여 주었다. 재건기는 조스 신부, 발전기는 보두네 신부, 확대기는 비에모 신부, 시련 재편기는 미알롱 신부가 활동하던 시기이며, 우도 신부와 베르몽 신부의 사목 시기는 이전 시기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던 때였다. ‘개화기 진산 지역의 신앙공동체’는 다양한 변화 과정을 겪었다. 그러면서 1902~1903년에 북쪽의 가새벌 공소와 남쪽의 안지렁이·개직이 공소라는 양대 체제로 재편되었고, 이 체제가 1910년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 있었다.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설립연도
2003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