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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따르기와 삼각 작용
Rule-following and Triang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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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대동철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6집 (2016.09)바로가기
  • 페이지
    pp.57-82
  • 저자
    이상룡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8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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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rule-following argument of Ludwig Wittgenstein and the triangulation argument of Donald Davidson connote that the meanings of language is based on practical action. For Wittgenstein, the rule-following means ‘customs’ and ‘practices’. Davidson argues that triangulation, i.e. communicative interaction is indispensable for the emergence of language. Both of them find the normativity of language not in thoughts and conventions, but in actions and practices. It is necessary for the second person, namely the other to emerge thought and language. The role of the other is not formulating rules of language, but participating in communicative triangulation. According to Davidson, they consist the speech community. If language is to be a means of communication, there must be agreement not only in definitions but also in judgments, like Wittgenstein said, this agreement demands the other. An existing interpretation has regarded the other as a community. For that reason, unlike Davidson who denies existence of convention and common language, ‘customs’ and ‘practices’, said Wittgenstein, are considered customs and practices of a community. However interaction between people who follow rules is the point for Wittgenstein, like Davidson. Action in common and practical activity is important alike. In Wittgenstein, practices which follow rules are definitely the common practices, but community don't decide directly ‘obeying the rule’ and ‘going against it’. Davidson doesn't deny the existence of a community. He denies just that community decides meaning: A common language, and a language community. He insists that we have a concept of objectivity only in social stage, and language is essentially social in this sense. That's what Wittgenstein meant. A community they meant is not a community of meaning or a language community, but a so-called 'community of practices'. This community is maintained with practice, or triangulation, not with a common language and convention.
한국어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 논증’과 데이빗슨의 ‘삼각 작용 논증’은 언어의 의미가 실천적 행위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은 규칙을 따르는 것을 ‘관습’, ‘실천’이라 말하며, 데이빗슨은 언어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삼각 작용, 즉 의사소통적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모두 사유나 규약이 아니라 행위와 실천에서 언어의 규범성을 찾는다. 데이빗슨은 사유와 언어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사람, 즉 타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타자의 본질적 역할은 그들이 서로 공유해야만 하는 공통 의미, 언어적 규약을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적 삼각 작용에 참여하는 것이다. 데이빗슨에 의하면 이들은 언어 공동체가 아니라 ‘스피치 공동체’를 구성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이기 위해서는 정의들에서의 일치뿐 아니라 판단들에서의 일치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일치는 타자를 요구한다. 기존의 해석은 그 타자를 ‘우리’, 즉 공동체로 간주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규약의 존재와 공통 언어를 부정한 데이빗슨과 달리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관습’과 ‘실천’은 공동체의 관습이고 실천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에서도 데이빗슨과 마찬가지로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 핵심이다. 둘 다 규약의 공유가 아니라 공유된 행위, 실천적 활동을 중시한다. 그리고 규칙을 따르는 실천은 분명 공유된 실천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공동체가 규칙 따르기의 올바름을 직접적으로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데이빗슨도 공동체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공동체가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을 부정할 뿐이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공통 언어, 언어 공동체이다. 데이빗슨은 사회적 무대 속에서만 객관성의 개념을 가질 수 있다고, 따라서 언어는 오직 이런 의미에서만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라고 주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고 싶었던 핵심도 이것이다. 그들이 생각한 공동체는 의미의 공동체 또는 언어 공동체가 아니라 ‘실천 공동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공동체는 공통 언어 또는 규약이 아니라 실천, 삼각 작용에 의해 유지되는 공동체이다.

목차

Abstract
 1. 머리말
 2. 규칙 따르기와 삼각 작용
 3. 공통 언어와 개인방언
 4. 실천의 공유와 공동체
 5. 맺음말
 참고문헌
 요약문

키워드

규칙 따르기 삼각 작용 실천 공통 언어 공동체 rule-following triangulation practices common language community.

저자

  • 이상룡 [ LEE, Sang-Yong | 부산대학교 철학과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철학
  • 소개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 간기
    계간
  • pISSN
    1229-0750
  • 수록기간
    1998~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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