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세계의 중심이며 인간이 머물고 살아가는 장소이다. 따라서 집이라는 구조물에는 인간의 존재방식과 가치관이 반영되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주역』은 동아시아의 세계관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온 텍스트이다. 주역은 천지(天地)를 커다란 생명의 총체로 본다. 주역의 세계는 음(陰)과 양(陽)의 조화와 변화에 의해 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세계이며, 변화와 움직임, 생(生)과 생생(生生)의 가치를 강조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주역의 세계관에 주목하여 한국 전통건축을 변화[易]의 건축, 움직임[動]의 건축, 역동적 균형[時中]의 건축, 생성(生成)의 건축으로 설명하였다. 변화[易]의 건축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의 필요에 순응하는 건축이다.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갈 건축물의 가설적(假設的) 측면에 가치를 두면서 동시에 구원성(久遠性)을 허용한다. 움직임[動]의 건축은 소요(逍遙)와 유(遊)의 건축이다. 몸의 움직임, 시선과 발걸음의 이동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연속적 변화를 경험한다. 역동적 균형[時中]의 건축은 구도의 평형(balance)을 추구하는 건축이다. 중심축의 규범을 고려하면서도 절대적인 대칭에 구애되지 않고 터의 구체적 상황에 맞추어 건물들을 배치한다. 생성의 건축은 생과 생생의 자연관에 바탕을 둔다. 인간이 자연의 생성 과정에 참여하는 건축이며, 인간과 자연의 협업으로 만들어내는 건축이다. 주역의 세계관을 통해서 보는 건축은 주변과 독립된 자기완결적 물체, 시각적으로 대상화된 피인식체(被認識體)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역의 세계관 속에서 건축과 자연, 인간의 관계는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분리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건축은 인간과 자연이 만드는 관계적 상황 속의 한 부분으로 존재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