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李昀(景宗)의 세자 책봉 奏請 문제에 관한 일고찰
A Glimpse of Submitting and Requesting Conferring Title of Crown Prince on Liyun(Gyeongjong) in Later of Chosun Dynasty 조선 후기 이윤(경종)의 세자 책봉 주청 문제에 관한 일고찰
That Chosun Dynasty pleaded Qing Dynasty for conferring Crown Prince is important part of tributary ritual between the two countries. Whether they were conferred or not had an important influence on the trend of the political situation of Chosun Dynasty. Chosun’s memorials to the emperors, would go to the Emperors of Qing Dynasty only after the Ministry of Rites of Qing dynasty discussed and replied. Thus, the Ministry of Rite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ackling Chosun’s pleading. Conferring of Gyeongjong, which was resolved by Chosun office by means of “bribery”, was once refuted or rejected by the Ministry of Rites. This phenomenon, contrary to the gracious policy on Chosun Dynasty since the middle of Emperor Kangxi, nor was it the Emperor’s intention, objectively caused Chosun’s disdain for the administration of Qing offic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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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자 책봉의 주청 문제는 조선과 淸나라 간에 朝貢禮儀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내용이다. 책봉의 與否가 조선의 政局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조선 에서 청나라로 보낸 奏文은 반드시 淸 禮部의 議覆을 통해 황제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래 서 청나라 禮部는 조선의 奏請에 관한 여러 외교사안을 교섭하는 과정에서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청나라 예부에서는 조선 왕세자 이윤(경종)의 책봉 주청을 持難하고 議駁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조선 정부에서는 “人情銀”을 사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청나라 康熙 中期부터 조선에 대한 顧恤 정책과는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나 청나라 황제의 뜻도 아니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조선은 청나라 각 衙門의 부패라는 윤리적 비판 의 입장에서 멸시감도 쌓이면서 소중화주의 논리와도 연결되고 있었다.
원광대학교는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한중관계연구원(원장 정세현)을 설립하였다.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중관계연구원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다. 이로써 한중관계연구원은 각 분야의 전문 연구소를 통해 한중간 현안들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며 중국과의 교류를 선도하며 중국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 명실상부한 중국문제 특성화 전문 연구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