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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의 이주담론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
Humanities studies of Chunwon’s discourse of immig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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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중인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중인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1집 (2016.06)바로가기
  • 페이지
    pp.23-42
  • 저자
    송현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8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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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Chunwon moved to Russia in 1914 where he wrote productively. His writing shows why he moved and what he sought, very clearly. 4 poems including ‘Isangta’, ‘2 Korean Poems’, ‘Thought for the Nation’ and ‘Ggotcheul Ggeoggeo Gwaneul Geot’ and a rhetorical writing titled ‘Prepare the Independence’ embody his aspiration for independence. In Daehan People's Government Periodical in Chita, Siberia, Chunwon's national consciousness and his wish for independence can be found. Especially ‘Jarijabgo Saomnida: To All Working Countrymen’, ‘Bonguksomun: The Youth are Sheep that Lost Their Shepard-Foal freed from restraint’, ‘Our Assertion’ and ‘About 50 Years of Korean Immigration to Aryeong’ revealed poor living conditions of Chosun workers who moved to Siberia and the same poor condition can be seen even now among foreign workers in South Korea. Chunwon informed of the reality of the nation for the Korea immigrants and asserted preparation for independence. In November 1918, Chunwon was reminded once again of his aspiration for independence hidden inside him when he witnessed effort of Korean immigrants for independence in Beijing. In January 1919, a speech contest was held in a Christian Youth Center in Tokyo to suggest starting of movement for independence; and ‘Petition to Call for the Nation’ and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ere prepared.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February 8th was a national movement that showed a strong will for continuous fight for independence as well as excellence in the international sentiment. His aspiration for freedom and independence were hidden inside him for a long time and his connection with the members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that he made during his stay in Shanghai from late 1913 to early 1914 led him to become a secret emissary for Shanghai. In Shanghai, he was involved mostly in activities for independence of the nation. On February 17, 1920, Chunwon announced a military song of independence in the Independence Paper. If he had been brainwashed by Japan and gone to Shanghai for Japan as its spy, it could not have been possible.
한국어
춘원은 1914년 러시아로 이주하여 많은 글들을 남겼다. 이 시기의 이주담론에는 그의 이주가 왜 이루어졌고, 그가 추구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가가 아주 분명히 드러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권업신문에 발표한 <이상타>, <시조 2수>, <나라생각>, <꽃을 꺾어 관을 것> 등네 편의 시와 논설문 「독립 준비하시오」는 모두 독립을 열망하는 춘원의 생각을 담고 있다. 시베리아 치타의 대한인정교보에 발표한 글들에도 춘원의 민족의식과 독립에 대한 열망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자리 잡고 사옵니다 : 노동하시는 여러 동포들에게」, 「본국소문 : 청년들은 목자 잃은 양-굴레 벗은 망아지」, 「우리 주장」, 「한인 아령 이주 오십 년에 대하여」 등에는 오늘날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의 문제가 당시 시베리아에 이주한 조선인 노동자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었음을 잘 볼 수 있다. 춘원은 이주 동포들을 위해 조국의 현실을 알려주기도 하고 독립을 준비해야 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춘원은 1918년 11월 북경에서 해외동포들의 독립에 대한 움직임을 보고 다시 한 번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두었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되살려낸다. 1919년 1월 동경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열어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하고, <민족대회 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다. 2.8독립선언은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강경한 입장에서 끝까지 일제에 투쟁할 것을 결의한 민족운동이라 할 수 있다. 자유와 독립을 향한 그의 열망은 아주 오랜 동안 그의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1913년 말에서 1914년 초까지의 상해 체류기간에 이루어진 임시정부 인사들과의 인연이 그를 상해의 밀사로 가게 만들었다. 그는 상해로 간 이후 대부분 조국의 독립과 관련된 일들을 했다. 1920년2월 17일 춘원은 독립신문에 <독립군가>를 발표하였다. 일본의 철저한 세뇌를 받고 밀정으로 상해에 기획 잠입하였다면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춘원의 러시아 이주와 상해 이주 기간에 발표한 글들은 그의 이주가 왜 이루어졌고, 그가 추구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가가 아주 분명히 드러나 있어서 춘원의 민족운동과 독립사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러시아 이주와 독립에 대한 열망
 3. 상해 이주와 독립 운동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춘원 정전 이주담론 독립선언서 독립군가 Chunwon Canon discourse of immigration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military song of independence

저자

  • 송현호 [ Song Hyun Ho |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중인문학연구 [Studies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0383
  • 수록기간
    199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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