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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산과 문화

아시쿠라지 일산회에 관한 고찰
A Study of Asikuraji’s Ilsan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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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남도문화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0권 (2016.06)바로가기
  • 페이지
    pp.335-356
  • 저자
    우정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79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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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Asikuraji and Iwakuraji are the strategic base and village for people of the Tateyama religion as well as the epicenter of carrying out missionary activities. Asikuraji used to have an organization called ‘Ilsanhoe’ comprised of monks and laities and a document called Tateyama that contains their activities still remains to this day. Based on the document Tateyama, I have looked into the organization of Ilsanhoe, and its roles and activities. Both monks and laities in Ilsanhoe had a wife, and Ilsanhoe had a strict internal order of rank. The top position was held by Illo, followed by Wonju. Wonju engaged in general affairs of Ilsanhoe. The role of Ilsanhoe was to serve as an organization that represents the village and to hold a praying ceremony for the Lord family in Gagahan. One of the most important activities of Ilsanhoe was to engage in missionary work during the busy farming season when believers made a variety of preparations if not religious items. While being the two temples of Ilsan, Asikuraji and Iwakuraji were on cat-and-dog terms. Asikuraji, which was relatively inferior made all-out efforts to respond to Iwakuraji’s attempts to check and control as too much was at stake, posing threat to the sheet existence of Asikuraji.
한국어
아시쿠라지(芦峅寺)와 이와쿠라지(岩峅寺)는 다테야마(立山)신앙의 거점지역이면서 종교인들의 촌락이고, 포교활동의 진원지라 할 수 있다. 아시쿠라지에는 승직(僧職)과 사직(社職)을 중심으로 조직된 일산회(一山会)가 있었고 그 활동에 대한 것들이 다테야 마 문서로 남아 있다. 본고는 다테야마 문서에 의거해서 일산회의 조직, 역할과 활동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일산회의 승직, 사직 모두 처대(妻帯)였고, 일산회 내부에는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었다. 최고직은 일로(一老)이고, 그 다음은 원주(院主)였다. 원주는 일산회의 제반적인 업무를 담당했다. 일산회의 역할은 마을의 대표하는 기구라는 것과 가가한(加賀藩)의 한슈가(藩主家)를 위하여 기도를 집전하는 것이었다. 일산회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나바(檀那場)의 회단배찰(廻檀配札)이고, 이때 단가(檀家)들이 원하는 종교적인 물건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게 준비를 해 갔다. 일산양사(一山両寺)이면서도 아시쿠라지 (芦峅寺)와 이와쿠라지(岩峅寺)는 견원지간이었다.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던 아시쿠라지 는 이와쿠라지 견제에서 일산회의 온 힘으로 대응했다. 왜냐하면, 아시쿠라지 존폐가 달린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아시쿠라지 마을과 다테야마 문서
 Ⅲ. 일산회의 역할과 활동
 Ⅵ.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다테야마(立山) 신앙 다테야마(立山) 문서 아시쿠라지(芦峅寺) 이와쿠라지(岩峅寺) 일산회(一山会) 숙방(宿坊) 회단배찰(廻檀配札) Faith of Tateyama Document Tateyama Asikuraji Iwakuraji Ilsanhoe Syukubo Kaidanhaisatus

저자

  • 우정미 [ Woo, Jung-mi | 경상대학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The Jirisan Region Culture Research Inatitute, Sunchon National University]
  • 설립연도
    1986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호남지방 및 남해안 지역의 향토문화를 조사ㆍ연구함으로써 지방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도모하며 민족 문화의 창달에 이바지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수행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남도문화연구 [The Centre for Namdo Culture]
  • 간기
    연3회
  • pISSN
    1975-826X
  • 수록기간
    199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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