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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전라도 곡성 德陽祠와 평산 신씨
A Study on the Deukyang Sa (Shrine) and the Pyeongsan Sihn clan in Goksung County
전라도 곡성 덕양사와 평산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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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남도문화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0권 (2016.06)바로가기
  • 페이지
    pp.279-306
  • 저자
    윤희면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79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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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Deukyang Sa, a school that had an auditorium and a dom, wished to honor Shin. Sung-gyeom was established in 1589 by a descendant who was a local governor living in Goksung county. Deukyang Sa Yang ban Sarim submitted public appeals to receive a charter. As a result, it acquired the charted name “Deukyang” in 1695. Deukyang Sa had patrian support for Westerners (Seoin). Deukyang Sa was the only charted Sawoo in Goksung. Yangban Yusaeng and descendants could exert social power. The figures whose names were enlisted were from the Yangban class in Goksung county. Deukyang Sa was used as a meeting place for Goksung Yangban. It was an important local Institute. It implemented the Gyeongwonjang system. A large part of the economic subsidy was provided by an administrative office. Deukyang Sa had spent most of the income on several kinds of rituals. The rest of the income was spent on the maintenance of Sawoo and social activities. In 1796 the local governor of Goksung county created a special account to help with the management of Deukyang Sa. The following local governors made a clan fraternity (Jonggye) in 1854 and the Pyeongsan Shin clan interposed management. Sowon was changed in the way it was used by descendants and Deukyang Sa was not an exception. Deukyang Sa could not escape abolishment in 1871. After that, descendants who wanted to continue the rites built a stone monument and Yongsandan. The Pyeongsan Shin clan of Cholla Province established Deukyangsowon in 1934 and recovered the former buildings.
한국어
조선시대 서원, 사우는 양반들의 교육기관으로, 당쟁의 여론 기구로, 서원 후손들의 문중 기구로 시대에 따라 성격이 변모되어 갔다. 평산 신씨 종중의 기구로 변모해 가는 덕양사의 모습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보려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1589년(선조 22)에 지방관 후손들이 앞장서고 곡성의 후손들이 힘을 보태 신숭겸을 모시는 사우를 건립하였다. 덕양사는 강당과 서재를 갖춘 교육기관이기도 하였다. 1695 년(숙종 21) 3월에 서인의 후원에 힘입어 「덕양」이라는 이름의 사액을 받았다. 곡성고 을에서 유일한 사액사우이기에 유생들과 후손들은 사회적 위세를 더 할 수 있었다. 덕양사는 노론의 경원장 제도를 채택하였다. 유생안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은 곡성의 양반이었다. 덕양사는 곡성 양반들의 모임처이자 향촌기구로 활용되고 있었다. 경제기반 을 살펴보면 서원전과 노비 이외에, 관아의 도움이 재정의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지출은 향사 비용이 대종을 이루고 서원 유지와 사회적 활동에 소요되었다. 1796년(정조 20)에는 평산 신씨 후손들이 덕양사 운영에 보태기 위하여 別庫를 만들 었다. 그리고 1854년에 지방관으로 내려온 후손들이 宗契를 만들어 더욱 운영에 간여하 였다. 19세기에는 서원, 사우가 후손들의 문중 기구로 변모되어 갔다고 할 수 있는데, 덕양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1871년(고종 8)에 덕양사는 철훼되었지만, 후손들이 遺墟碑를 세웠고, 龍山壇을 만 들어 제향을 계속하였다. 1934년에는 조상을 현창하고 문중의 위세를 과시하고자 덕양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복설하였고, 이후에도 중수, 중건을 하여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설립, 사액, 운영
 Ⅲ. 別庫와 宗契의 설치
 Ⅳ. 철훼와 복설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덕양사 건립(1589) 신숭겸 사액사우(1695) 노론 후원 별고(1796) 종계(1854) 평산 신씨 문중사우화 덕양사 철폐(1871) 덕양서원 복설(1934) Deukyangsa(1589) Educational function Royally Charted Shrine(1695) Economic base Gyeongwonjang system a special account(1796) clanfraternity(1854) Family Shrine Abolition(1871) Reestablishment(1934)

저자

  • 윤희면 [ Yoon, Hee-myeon | 전남대학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The Jirisan Region Culture Research Inatitute, Sunchon National University]
  • 설립연도
    1986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호남지방 및 남해안 지역의 향토문화를 조사ㆍ연구함으로써 지방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도모하며 민족 문화의 창달에 이바지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수행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남도문화연구 [The Centre for Namdo Culture]
  • 간기
    연3회
  • pISSN
    1975-826X
  • 수록기간
    1994~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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