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같이 요코미쓰 리이치의 『기계』를 ‘나를 보는 나’를 ‘거울’과 관련지어 분석해 보았다. 『기계』의 ‘나’는 등장인물인 동시에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 가루베, 야시키’는 서로를 비추어주는 거울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 가루베가 나를 의심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가루베를 의심하게 되고, 가루베가 나를 의심한 것처럼 나도 야시키를 의심하게 된다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는 것은 가루베와 야시키를 통해서 나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나도 가루베처럼’ ‘가루베는∼나처럼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가루베)를 보고 있자니 자연히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등의 표현에 나타난 것처럼 ‘나를 보는 나’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러한 표현은 가루베와 야시키를 통해서 ‘나를 보는 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가루베와 야시키는 나를 비추어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주인은 나와 가루베를 반사해 주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었다. 나는 주인을 통해서 내 추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주인과 나의 동일시 현상도 거울로서의 역할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내 모습과 주인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 흡사할 것이라는 동일시는 주인이 거울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네임플레이트 제작소에서 사용한 극약과 같은 약품으로 ‘주인의 머리처럼’ 내 머리도 점점 이상해질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주인의 머리의 결함이 틀림없이 일어나듯이 내 머리의 결함도 언젠가는 반드시 작용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야시키의 죽음을 통해서 나는 내 의식을 추적해 가지만, 내 의식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과로로 인한 ‘수면 부족’과 ‘피로’로 내 의식은 불분명했고, ‘결국 나는 내 의식을 믿을 수 없게 되고 누군가에게 ‘나를 심판해 달라’고 하기까지 이르게 된다. 극대화된 ‘수면 부족’과 ‘피로’는 야시키의 죽음으로 ‘나를 보는 나’를 판단할 수 없게 한 장치로 설정하여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시키의 죽음으로 가루베, 야시키 나와의 관계는 깨어지고, 나를 비추어 줄 수 있는 거울이 없어짐으로써 ‘나를 보는 나’는 나를 판단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계』에 등장하는 가루베와 야시키, 주인은 ‘나를 보는 나’를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