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에 발행된 『노를 보는 사람들에게』(『能を見る人に』)에 수록된 「주요 노연기자(能楽師) - 1946년 1월 현재」라는 글에는 경성에 거주하는 노 연기자 4명의 이름이 게재되어 있어 노를 취미로 하는 일본인이 경성에도 다수 거주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본고에서는 1910년 11월 12일 国諷社 주최의 시모노세키•부산•경성 공연여행에 대해서, 주로『国諷』에 실려있는 일본측기록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1910년 공연은 현지 일본인을 관객으로 의식한 행사였다는 것과 참가한 노연기자들에게도‘한국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가보자’라는 의식이 있었다는 것, 공연수입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는 점, 참가예정이었던 기타 롯페이타(喜多 六平太)가 참가할 수 없게 되어 표의 판매가 예정보다 적어 상당한 적자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전 한국에서의 노공연은 현지 한국인들에게 노를 보급하는 의도는 희박하였고, 일본인사회를 상대로 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앞으로 노를 포함하여 전쟁 전에 한국에서 이루어졌던 예능공연에 대해서 조사를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