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황남대총 북분 피장자의 성별에 대한 새로운 접근
A new approach to the sex and gender of the buried person in the Hwangnamdaechong North Mound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중앙문화재연구원 바로가기
  • 간행물
    중앙고고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0호 (2016.06)바로가기
  • 페이지
    pp.73-103
  • 저자
    김성태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79033

원문정보

초록

영어
New evidence is presented to argue that the buried person in the Hwangnamdaechong North Mound is a female. The large amount of glass beads found above the gold crown have been argued to be decorations for neck and chest; instead, this paper argues that the glass beads are from wigs. Such beads are not found in the tombs of known to belong to men, such Cheonmachong(천마총) and the Hwangnamdaechong South Mound(황남대총 남분). In addition, historical literature of Silla records that women favored wigs decorated with glass beads. Figure of a spindle whorl is another evidence that supports the female identity of the North Mound. Spindle whorls are mostly buried in female tombs such as Yeanri Tombs, and weaving was a task exclusively undertaken by women in Silla. In addition, spindle whorl figures were included in the Buddhist devotional package for women found in the Bunhwangsa stone box. Also, royal women were in charge of textile manufacture and religious rituals related to agriculture. A small glazed-pottery found in that tomb offers another clue. As perfumes bottles were associated with women, and were considered to be precious, the user is supposed to be of a royal woman. It is similar to the bronze perfume bottle found in the stone box of the Bunhwangsa. The sparse weapons buried in that tomb also indicate a female burial. There was not much armor, and the arrowheads excavated are not the kind used in actual combat. This pattern is similar to the one found in the female burials in Yeanri. The tip of the belt with the inscription ‘夫人帶(Lady belt)’ reinforces the original assessment of a female burial. Contrary to the argument that the belt was not used during the lifetime, four similar silver belts were found in the South Mound. The fact that the material used was silver rather than gold or bronze indicates a status before being promoted to 大夫人(Great Lady). In short, this paper supports the traditional hypothesis that the buried person in the Hwangnamdaechong North Mound is a female, and disagrees with the new opinion that the buried person is a male.
한국어
이 글에서는 다양한 자료와 새로운 관점으로 황남대총 북분의 피장자가 여성(이하 北墳女塚說)이라는 기존의 통설을 옹호하고, 아울러 기존의 견해들을 문헌기록과 고고자료를 통해 체계적으로 보강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황남대총 북분의 금관 위쪽에서 군집 상태로 출토되어 頸胸式으로 보고된 다량의 유리구슬들이, 가체(加髢) 즉 장식가발일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를 북분여총설의 새로운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주장의 근거로는 신라의 여성들이 유리구슬로 장식한 가체를 애용했다는 문헌기록, 群體의 유리구슬이 남성의 무덤인 황남대총 남분과 천마총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 등을 들었다. 2) 방추차형석제품 역시 북분을 여성의 무덤으로 보는 근거로 삼았다. 그 이유로는 김해 예안리고분군에서 방추차는 여성의 무덤에서만 확인된 점, 신라사회에서 직물의 생산은 여성의 몫이었던 점, 방추차형석제품과 유사한 유물이 여성용품이 일괄로 봉납된 분황사 석탑 석함의 공양구에 포함되는 점, 왕녀가 직물생산의 주관자이자 농경제례의 종교적 직능자 역할을 담당했던 점 등을 들었다. 3) 북분의 부장품수장부에서 출토된 흑갈유소병이 크기와 형태에서 고려시대 여성의 무덤에서만 출토되는 油甁과 일치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여성용 향수 혹은 화장품을 담은 香油甁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이를 분황사 석탑 석함의 공양구에 포함되어 있는 청동향유병을 통해 방증했다. 4) 무기류를 통해서도 북분여총설을 더욱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그 근거로는 북분에서는 갑주류가 전혀 출토되지 않은 점, 철모와 철촉은 남분에 비하여 매우 소량만 출토되었고 그것마저도 실전용이 아닌 점, 이런 출토양상이 김해 예안리고분군의 여성 무덤에서의 무기 부장양상과 상통하는 점 등을 들었다. 5) ‘夫人帶’명 은제과대 띠끝꾸미개의 분석을 통해서도 기존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구체적으로 피장자가 생전에 착용했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하여, 북분 출토품과 동일한 형식의 것이 남분 출토 4점의 은제과대 중에서 확인되는 점을 들어 문제의 은제과대가 생전에 사용했던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재질이 금제·금동제가 아닌 은제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大夫人’이 되기 이전에 사용했던 과대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더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새로운 근거의 제시
  1. 加髢
  2. 黑褐釉小甁
 Ⅲ. 기존 견해의 보강
  1. 방추차형석제품
  2. 무기류
  3. ‘夫人帶’ 명 띠끝꾸미개
 Ⅳ. 맺음말
 참고문헌
 Bibliography
 Abstract

저자

  • 김성태 [ Kim, Sung-Tae | 경기학연구센터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중앙문화재연구원 [Centr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설립연도
    2000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문화재의 보호, 관리, 조사, 발굴 및 그 활용과 전국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전담법인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체제 유지를 통하여 민족 문화의 보존ㆍ보급ㆍ선양ㆍ전승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1970년대부터 국토개발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현대생활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각종 대규모 토목공사가 계획ㆍ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대규모의 토목공사는 땅의 형질변경을 수반함으로 인해 문화유적의 훼손과 파괴를 초래한다. 1990년대 초까지의 매장문화재 조사는 국립박물관, 문화재연구소, 대학박물관 등에서 주도하여 왔으나 매년 증가하는 문화재조사 수요를 감당하기 힘든 실정으로 사업시행의 지연과 문화재관련 학술자료획득의 양면에서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됨에 따라 매장문화재 전담법인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상시 문화재조사 체제를 유지하며, 문화재조사와 관련하여 사업시행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긴급발굴에 따른 졸속 발굴 등을 예방하여 철저한 학술자료 획득 및 전문인력의 양성을 통한 전반적 발굴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설립되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중앙고고연구 [Journal of Centr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간기
    연3회
  • pISSN
    2233-6230
  • 수록기간
    2005~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중앙고고연구 제20호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