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라이 도스이 『계림정화 춘향전』은 『춘향전』 일본어로 번역한 시조이다. 도스이는 일본인들의 조선에 대한 몰이해를 아쉬워 해 집필을 시작하였으나,그 모습이 완전히 잊혀져 버리게 된 것은 일본의 「근대」에 대한 편파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도스이는 대마도에서 태어나 부산 왜관의 외로운 환경에서 조선 소년에게서 조선어를 배우는 것을 최상의 즐거움으로 한 인물이다. 그런데 일본을 비난하는 동내부의 계시문을 필사하여 왜관 관장에게 전달했던일을 보면, 역시 도스이의 삶의 입각지는 일본 쪽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명치시대의 「근대」 일본은 도스이에게 있어서 지내기 편하지 않은 곳이었고, 도스이는 다시 조선에 건너와 재야의 입장에서 『계림정화 춘향전』을 발표하였다. 『계림정화 춘향전』은 급속히 근대화되는 명치일본에서 정치적인 외면을 당한도스이가 일본의 독자들에게 조선의 「토풍인정」을 알려 주는 작품이었다. 도스이와 『춘향전』의 만남은 숙명적인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 「번역」의실태를 검토하면 일본의 독자들에 대한 과잉된 배려가 보이고, 그것 때문에 원래 『춘향전』에 있었던 재미가 상실하게 되었다. 『계림정화 춘향전』에서 보이는 번안(=개작)의 흔적은 근대국가형성의 과정 속에 번롱되어 겨우 걸어간도스이의 발자국처럼 보인다. 물론 우리는 발로 밟힌 쪽의 아픔, 즉 개작됨을당한 쪽의 슬픔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약자에 대한 상상력이 무자각적으로 망각되었을 때, 강자에 의한 권력행사로서의 「번역」 「번안」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반복되기 때문이다.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The 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 Dongguk University]
설립연도
1979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소개
동국대학교 부설 일본학연구소는 일본의 역사, 문화, 사회를 연구하여 한일간의 상호이해증진과 문화교류에 이바지하고자 다음과 같은 사업을 실시한다. 첫째, 한일관계의 연구발표 및 강연회를 개최한다. 둘째, 정기 간행물과 연구도서 발간 및 자료를 수집한다. 셋째, 한일관련 연구비를 보조한다. 넷째, 내외 저명인사의 초빙과 임직원의 해외파견을 실시한다. 다섯째, 부속도서실을 운영한다. 여섯째, 기타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을 실시한다. 이상과 같은 사업을 통하여 한일관계의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지금까지 가깝고도 먼 양국관계에서 가까운 양국관계를 구축해 가는데 일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