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sa, KIM Jeong Hee(1786-1856), is one of the most famous calligraphers in Korea. Calligraphies of Chusa, however, are so strange and unusual over the beauty. What is the sense of this kind of abnormality? The answer is in the idea of that period. At that time Asians, specially Korean and Chinese, join together for the movement of culture to build a new world. They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past calligraphies on 'bronze and stone' rather than 'paper' to renew their countries powerfully and intensely, because those characters show us our own tenacious spirit instead of literary indulgence. In order to overcome their feebleminded civilization, they demand a new thing from their traditional culture. Chusa really had met a Chinese scholars named RUAN Yuan(1764-1849) and WENG Fang-gang(1733-1818) as teachers, and communicated each other by personal parcel post. The effeminacy at the present day should be withdrew for the future of strong country. The point is not only at calligraphic patterns but also at the will of Ch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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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체를 운운하면서 그의 글씨를 멋지고 날래다고 평가한다면 옳은 일인가? 그의 글씨는 아름다운가? 과연 그의 글씨는 ‘천하의 명필(名筆)’인가? 그리고 명필의 표준은 무엇인가? “추사체는 추하다.” 추사체의 형태나 구조를 놓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어법상 맞지 않는다. 추사체는 예쁘지는 결코 않을뿐더러 오히려 기괴하거나 괴상하다. 그렇다면 추사체는 ‘미’(美)의 영역과는 반대편에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는데, 오늘날은 어찌하여 추사체가 천하의 명필로 인정되게 된 것인가? 그것은 추사의 이념 때문이다. 여기에서 김정희의 사상적 역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를 평가할 때,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라는 칭호가 따라붙는데, 왜 이러한 이야기가 한꺼번에 거론되는지 알아야 한다. 사실 그 셋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해의 관건은 바로 ‘금석’(金石)이다. 김정희가 금석학을 만나게 된 동기는 역사적으로 분명하다. 조선이 한참 북학열(北學熱)에 달아올랐을 때 이야기다. 1809년(순조 9) 24세 때 생원시(生員試)에 장원하면서, 아버지 김노경(金魯敬)이 동지겸사은사부사(冬至兼謝恩使副使)의 자격으로 북경으로 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자제군관(子弟軍官)의 직분으로 따라가게 된다. 이 때 김정희는 47세의 완원(阮元: 1764-1849)과 78세의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을 찾아 사제의(師弟義)를 맺고, 조선으로 와서도 옹방강과 편지로 연경지도(硏經指導)를 받는다. 1815년(순조 15) 30세 때는 37세의 섭지선(葉志詵: 1779-1863)과 서신으로 교유하게 된다. 1817년(순조 17) 32세의 김정희는 마침내 경주에 가서 <무장사비>를 찾고, <북한산비>를 다시 찾아 비자(碑字)를 심정(審定)한다. ‘종이에서 돌로 가자.’ 바로 이것이 당시의 이론가였던 완원의 「북비남첩론」과 「남북서파론」의 요지이다. 김정희는 사상적으로 완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진당(晉唐)의 고법(古法)’이 육조풍(六朝風)으로 바뀌는 혁명적인 개혁이었다. 중요한 것은 김정희의 정신이지 형식이 아니다. 현대의 우리에게 한나라나 북위가 생명력 있게 다가오긴 힘들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찾아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만일 김정희를 만나 그의 껍데기만 배우고 그의 알맹이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에게도 누가 되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김정희의 이념과 정신을 말하는 것이 그의 서체를 말하는 것보다 의미가 있다.
목차
Abstract 1. 추사의 이념: 왜 이념인가? 2. 동아시아 이념공동체: 청대 지식인의 사고 3. 북학열: 강세황의 경우 4. 남북서파론 5. 정신의 수립: 북한산순수비 6. 새로운 정신을 찾아서: 한글서예 참고문헌 요약문
키워드
추사정신북학열(北學熱)금석(金石)완원(阮元)북비남첩(北碑南帖)the will of Chusafever for present Chinese studiescalligraphies on bronze and stoneRUAN Yuan and WENG Fang-gangnorthern character on stone and southern one on paper.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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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