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埠 개설 이전 청대 濟南城은 山東省, 濟南府, 歷城縣이라는 세 등급의 지방정부가 모두 자리한 곳이었으므로 산동성의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濟南城은 도시건설, 도시면모, 도시기능에 있어서 행정도시의 특징을 잘 드러내 주고 있었다. 濟南城에는 관서, 학교 및 省과 縣 관할의 과거시험장과 같은 행정 및 교육관련 시설이 많이 분포해 있었기에 성 내에는 일찍부터 관리들을 위한 서비스 업종이 발달해 있었다. 또한 濟南은 북쪽으로 黃河 및 小淸河와 맞닿아 있고 황하연변에 있는 濼口 부두는 산동 반도의 동서를 연결해 주고 있어 수로교통이 편리하였다. 따라서 濟南은 점차 鹽運의 중심지이자 상품유통의 집산지로 변해 갔고, 인구가 밀집한 濟南의 西關 일대는 상업중심지로 변모하여 “五大行”과 같은 번영한 상업 업종이 출현하였다. 한편 濟南 주위의 城鎭은 수로 혹은 육로를 통하여 濟南이 필요로 하는 상품 및 농부산품을 운송, 보급하였고 이로 인해 상당히 번창한 상업 城鎭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이들 城鎭에는 민간 수공업 및 상품경제의 발전에 따라 수공업 공장도 생겨나게 되어 원래 있던 상업 城鎭은 더욱 번창하게 되었고 새로운 상공업 城鎭도 계속해서 흥기하였다. 1862년 烟臺가 개항하자 곧 엄청난 양의 洋貨가 烟臺를 통해 수입되어 들어왔고 새로이 商路를 갖춘 濟南을 거쳐 산동 내륙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양화가 가져온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山東 내륙 城鎭鄕들의 전통적 농업, 수공업 경제구조가 파괴되었고 자연경제도 점차 해체되었다. 濟南의 전통적 시장도 기존의 소비성 시장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형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濟南은 스스로 商埠를 개설하게 되었고 開埠를 통해 濟南은 상업도시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商埠에는 거대한 외국 자본에 의해 수많은 외국 은행과 洋行이 생겨나 洋貨의 판매는 물론 각종 경제활동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곧 濟南은 외국 자본의 위력 속에서 기존의 전통적 상품경제에서 벗어나 새로이 편성된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일부분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그 결과 濟南은 商埠를 통해 양화 및 토산품을 수출입하는 집산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도시 상업경제의 발전을 기반으로 이룩한 내외무역의 확대로 산동 내륙의 산지시장과 해안도시시장을 연결시키는 중심시장으로 발전하였다.
부산대학교 중국전략연구소(구 부산대학교 중국연구소) [Institute of China Strategy]
설립연도
2006
분야
사회과학>사회복지학
소개
본 연구소의 설립을 통해 우선 한중 양국 국민의 상호이해와 교류증진을 위한 인문, 사회과학적인 연구는 물론이고, 이를 통해 기업(인)이 중국에 안정적인 정착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각종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게다가 본 연구소는 기존의 연구소의 기능과는 달리 단순한 학술 교류에 머물지 않고 인적 교류를 통해 양국관계의 이해를 증진하고 나아가 한국과 중국의 각종 프로젝트를 적극 유치, 개발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재원의 창출을 도모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