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essay examines the interracial marriage between a white American woman named Mae Watkins and a Chinese man named Tiam Franking in the early 20th century. It analyzes their letters and her biography ghostwritten by Katherine Anne Porter to extrapolate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ir transnational marriage life. It finds that this couple put forth their belief in the modern idea of marriage as a matter of individual choice to defend their love against the oppositions from American and Chinese society when both societies took for granted the idea of regulating marriage across racial and ethnic lines in order to build a homogeneous nation. Mae Franking’s side of the story exemplifies how the different gender systems of America and China interacted across borders. She navigated the different ideals and expectations of marriage and family from her native and adoptive countries. The confluence of the domestic visions of two countries defined her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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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세기 초 백인 미국인 여성 매이 왓킨스와 중국 남성 티암 프랭킹 사이의 인종 간 결혼을 검토한다. 이 부부의 편지와 캐서린 앤 포터라는 유령작가에 의해 쓰인 매이의 전기를 분석함으로서 이 글은 프랭킹부부의 국가적 경계를 횡단했던 결혼 생활의 역사적 의미를 끌어내고자 한다. 이 부부는 결혼을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보는 근대적 견해를 주장하며 미국과 중국 사회로부터의 반대에 맞섰다. 당시 이 두 나라는 민족적 동질성을 추구하기 위해 인종과 민족의 경계를 넘어선 결혼은 규제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매이 프랭킹의 결혼 이야기는 미국과 중국의 서로 다른 젠더체계가 국경을 넘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는 태어난 나라와 결혼으로 선택한 나라의 결혼과 가족에 대한 서로 다른 이상과 기대를 항해했다. 그녀의 결혼생활에서 미국과 중국의 가정적 이상이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에 있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인종 간 관계에 대한 금기에 도전한 백인 여성으로 표상된 매이 프랭킹 3. 가족, 국가와 민족, 인종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서의 결혼 4. 중국의 여성과 가족 문화를 이해하는 ‘중국인 아내’ 되기 5. 나가며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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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학회 [The Korean Workshop for the History of Culture]
설립연도
2000
분야
인문학>역사학
소개
한국의 서양사학계는 새로운 학풍을 도입하고 실험하며 우리의 역사학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오늘날 서양사학계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는 선배들의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에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그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에도 인식을 같이 한다. 그 요구는 여러 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첫 번째는 서양사학 내부에서 솟구치는 추동력이다. 두 번째는 인접 학문 분야와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필요성이다. 역사학 내부에서도 한국사나 동양사와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거니와,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 이룬 결실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 다른 학문 영역에서 역사학에 침투하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세 번째는 일반 대중이 서양사에 대해 느끼는 갈증에 연유한다. 우리의 서양사학이 많은 업적을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대중들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학자들만을 위한 학문의 장을 열어왔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여러 목표들을 수렴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우리는 문화사라는 대안을 상정한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사는 역사학의 특정 분야로서 다른 분야를 배제시키는 개념의 문화사가 아니다. 그것은 침전된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여과 장치이며 역사에 스며든 사람들의 생각을 되살리도록 만들어주는 재생 장치이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방식이지 역사의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정하는 문화사는 다양한 역사가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우리의 시도는 한 마디로 학문적 연대감을 갖는 학문 공동체를 만들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서양사라는 자기모순적인 명제를 넘어서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기극복의 도전이다. 이런 논지가 암시하는 바, 우리 역시 언제 누군가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