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tion of ‘bourgeois revolution’ was not formulated for the first time by Marx, but he borrowed it from the liberal historiography of the French Restoration. And we can trace its origin into the concept of social revolution during the English Revolution. What Marx did is that he systematized that notion, furnishing it the long-term perspective on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in terms of historical materialism, and providing it some fertile reflections about the revolutionary agents and historical results of bourgeois revolution in the light of personal experiences during the German Revolution of 1848-1852. The classical tradition of Marxism produced various theories on the bourgeois revolution in the prospect of the future Russian Revolution, starting from Marx. The ‘bourgeois-democratic revolution’ of Lenin, the ‘permanent revolution’ of Trotsky, and the ‘passive revolution’ of Gramsci are its best examples. However, the rise and seizure of power of Stalin made the schematic doctrine of bourgeois revolution with historical stages theory into orthodoxy. Unfortunately it was this kind of theory of revolution that the Marxist historians encountered, when the notion of bourgeois revolution materialized into the concrete full-fledged historical writings for the first time in 1930s and 40s. Therefore today, to retrace the historical lineages of conception ‘bourgeois revolution’ means to restore its various and fertile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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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혁명론은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정식화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 왕정복고기의 자유주의 역사서술로부터 차용한 것이며, 그 뿌리는 영국혁명기의 사회혁명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르크스가 한 것은 사적 유물론이라는 분석틀에 입각하여 부르주아혁명론에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거시적 전망을 부여해주고, 1848-1852년에 독일혁명의 경험을 통해 부르주아혁명의 혁명적 주체와 역사적 성과에 관한 풍요로운 성찰을 제공하여 부르주아혁명론을 체계화한 일이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은 마르크스의 성찰에서 출발하여 무엇보다도 러시아혁명의 전망 속에서 다채로운 부르주아혁명관을 빚어냈으며, 레닌의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론’,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그람시의 ‘수동혁명론’ 등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하지만 스탈린의 부상과 집권은 도식적인 역사발전단계론에 입각한 부르주아혁명관만을 정통 교리로 끌어올렸고, 불행하게도 1930-40년대에 부르주아혁명관이 구체적인 역사서술로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좌파 역사가들이 접했던 혁명론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부르주아혁명론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하는 작업은 곧 그 다채로운 전통 속에서 부르주아혁명관을 되살리는 것을 말한다.
문화사학회 [The Korean Workshop for the History of Culture]
설립연도
2000
분야
인문학>역사학
소개
한국의 서양사학계는 새로운 학풍을 도입하고 실험하며 우리의 역사학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오늘날 서양사학계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는 선배들의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에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그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에도 인식을 같이 한다. 그 요구는 여러 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첫 번째는 서양사학 내부에서 솟구치는 추동력이다. 두 번째는 인접 학문 분야와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필요성이다. 역사학 내부에서도 한국사나 동양사와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거니와,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 이룬 결실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 다른 학문 영역에서 역사학에 침투하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세 번째는 일반 대중이 서양사에 대해 느끼는 갈증에 연유한다. 우리의 서양사학이 많은 업적을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대중들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학자들만을 위한 학문의 장을 열어왔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여러 목표들을 수렴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우리는 문화사라는 대안을 상정한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사는 역사학의 특정 분야로서 다른 분야를 배제시키는 개념의 문화사가 아니다. 그것은 침전된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여과 장치이며 역사에 스며든 사람들의 생각을 되살리도록 만들어주는 재생 장치이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방식이지 역사의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정하는 문화사는 다양한 역사가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우리의 시도는 한 마디로 학문적 연대감을 갖는 학문 공동체를 만들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서양사라는 자기모순적인 명제를 넘어서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기극복의 도전이다. 이런 논지가 암시하는 바, 우리 역시 언제 누군가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