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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으로서의 조선어, 기획으로서의 시조
Korean language in colonial time as Ideology, Shijo as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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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중인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중인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7집 (2015.06)바로가기
  • 페이지
    pp.1-21
  • 저자
    강영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5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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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Tokyo, Chu Yo han was an outstanding poet compared to other Japanese colleagues, since he created Western symbolist poems. However, it was inevitable for him to recognize limitation as a citizen from a colony. Then, he firstly moved to Shanghai in 1919, uniting with Lee Guang Soo and Ahn Chang Ho, and he soon understood the current reality of his country. Shortly after, he started to write shijo and publish magazines. When he returned to Pyeongyang(Kyungsung) in 1925, he became a chief judge in selecting poems as well as the publisher of 「Joseonmundan」 and 「Dongguang」. During this time, he lost passion toward poetry and in turn his identity as a poet. In fact. Chu Yo Han did not perceive Korean language in colonial time as a practical and specific language, but he selected it as his ideological conviction. For the same reason, his shijo were not created with poetical inspiration, but they were made with the concrete plan to participate in an ideological movement. The series of process that mentioned above are thoroughly observed in his track from Tokyo to Shanghai, and finally to Pyeongyang(Kyungsung).
한국어
도쿄에서, 주요한은 서구 상징주의 시를 창작하며 일본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으나, 시쓰기로는 극복할 수 없는 피식민자의 한계를 인식한다. 1919년에는 상해로 건너가 이광수, 안창호를 만나 현실을 파악하며 시조 쓰기와 잡지 편찬 활동을 시작한다. 1925년에는 평양으로 돌아와 조선문단과 동광을 편찬하며 시부문 고선자로 활동한다. 이 일련의 과정이 도쿄-상해-경성(평양)으로 이동한 주요한의 궤적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특이한 것은 그 과정에서 주요한이 시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주요한에게 조선어는 실제적이고구체적인 언어가 아니라 이념으로 선택한 언어였고, 시조는 영감을 통한 창작물이 아니라 기획하여 만든 운동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주요한이 시 창작자로서보다는 문단 기획자로서 활동의 영역을 확대하는 이 일련의 과정에는, 식민과 제국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중심과 주변을 설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별적인 피식민지의 정체성을 보듬고 보존하며 다양한 중심들을만드는 방식으로 조선의 문단을 만들려는 의도가 작용했다. 피식민자가 식민자를 따를 수밖에없는 현실 원리를 인정하되, 식민자의 주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 고유의 문화를 창출하려한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공간 이동의 궤적과 시쓰기의 향방
  1) 도쿄, 시와 현실의 간극 인지하기
  2) 상해, 시와 현실을 동일한 층위에서 인식하기
  3) 경성, 시보다 현실을 우위에 두기
 3. 잡지 편집과 시 고선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강영미 [ Kang, Young-Mi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시간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중인문학연구 [Studies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0383
  • 수록기간
    199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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