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 그림으로 사유하는 철학자 ―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한 세 번째 시론
Cézanne, the philosopher 'pense en peinture(thinking in painting)' ― The third philosophical essay about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in Merleau-Ponty
This Thesis is to show Merleau-Ponty's words,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are interwinded' which was the one of the his latest issues through the Cézanne's pictures and his life. The picture is visible but what painters wanted to draw was toward the invisible, the space or depth. We always see it but nonethless think it is invisible. This paradox has been repeated in the history of the science as well as the one of the painting. the space and the light hqve been the problems of the scientists, what was presupposed by modern scientists was thought as the empty and absolute reality but what was created by painters was regarded as illusions. So the priority of the science to the arts has been established. The space like the light has things be. But Merleau-Ponty went this context into reverse, he said that scientists had reduced the light into the contact with closed their eyes, so what they got to reach should be illusion as the dream. In other side what painter have been painted always is real, which they see and draw through their eyes and hands directly. In this context the becoming blind of 'the humanbeing' became the transparent mind invisigle without eyes, which has been criticized by post-french philosophers like Derrida. Merleau-Ponty especially mentioned Cézanne and his works because that he proposed the road to restore the vision in the history of the modern paintings. He deconstructed the prospective of the line and attempted to represent the visibility of the light and the nature through the graduations of the colors and called it the prospective of the color. What he was to reveal In his works was the swollen nature three dimensional with the depth. He pointed out the body-subject which Cézanne realized with his works and his life, could have people blind wake up from the false dream of the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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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 얽혀 있다.’는 후기의 문제의식을 세잔의 일생과 그림 작업을 통해서 해명하려는 시도이다. 그림은 보이는 것이지만 화가가 정작 그리려고 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즉 공간, 깊이였다. 우리는 늘 공간, 깊이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이상한 역설은 회화에서만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반복되는데, 근대 과학자들에 의해서 공간은 보이지 않는, 그래서 비어있는 절대적 실재로 전제되었다. 반면 원근법적 화가가 가시화시킨 공간은 착시가 되면서 예술에 대한 과학의 우선권(priority)이 기정사실화되었다. 메를로-퐁티는 자신의 철학을 통해 예술과 과학의 위계를 반전시켰다. 데카르트 이래로 과학자는 눈으로 보아야 할 빛을 맹인의 접촉으로 환원하였기 때문에 과학의 자연은 꿈과 같은 거짓 조작이며 착시이지만 화가들이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그리는 빛(색들의 대비들)은 오히려 실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과학을 비판하고 재정립하기 위해서도 예술가들을 조회하는 일은 메를로-퐁티의 작업에서 특징적인 태도였다. 세잔은 현대회화사에서 비전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는데, 그는 선의 원근법을 해체하고 색을 통해서 빛과 자연의 가시성을 재현하려고 했고 이를 색의 원근법이라 칭했다. 그가 선이 아니라 색에 우선권을 두고 작업하면서 색들의 대비들을 통해 드러내려고 했던 것은 깊이를 가진, 볼록한, 입체적 자연이었다. 맹목적인 근대 과학이 보기를 포기했던, 이 가시적 존재의 비가시성은 과학적 기호로 구현되었고 보이지 않는 실재의 세계로 가정되었는데, 이 과학의 맹목화 과정 속에서 인간은 보는 눈을 잃고 투명한 정신으로 정립되었다. 데리다와 같은 후기-프랑스 사상가들은 이 같은 인간에 기반을 둔 근대인간학이 사상누각의 꿈에 불과한 것으로 비판했는데, 그보다 앞서 메를로-퐁티는 세잔의 그림을 통해서 ‘신체를 잃은 인간’에 개탄하면서 비전을 되찾은 몸의 인간만이 이 잘못된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음을 역설했던 것이다.
목차
Abstract 1. 머리말: 비전은 형이상학이다. 2. ‘자연을 사유하기’: 침묵의 과학과 조작주의적 과학 비판 3. 빛=공간=코기토: 새로운 광학을 위하여 가. 크로마톨로지(chromatology): 선에 대한 색의 전복(subversion) 나. 색의 원근법: 세잔의 색채 과학 4. 나가기 참고문헌 요약문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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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