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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 나타난 단종시대 효행장려정책의 특징과 강원도 영월지역 효충문화 연구
King Dan-Jong’s filial piety policy and a movement of filial piety and patriotism in Yeongwol, Ga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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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효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효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1호 (2015.06)바로가기
  • 페이지
    pp.1-33
  • 저자
    김덕균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5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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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Filial piety and patriotism was an ideological backbone of the Chosun Dynasty. Love and respect in a family, which are the key aspects of filial piety, is directly linked to patriotism in a national level. This patriotism became the key component to maintain order in the nation. In some cases, one even sacrificed his/her own life to conduct filial piety and/or to have patriotism for his/her parents and/or the country, respectively. King Dan-Jong has been known to be one of the most unfortunate kings in Chosun Dynasty. His uncle forced him to abdicate, and took his place as King Se-Jo, and exiled Dang-Jong to Yeongwol, Gangwon. King Dan-Jong was later murdered and buried in Yeongwol. Many Korean people these days acknowledge Yeongwol with King Dan-Jong’s sad story. Dan-Jong lost his father, King Mun-Jong, when he was only 12 years old and became the sixth king of the Chosun Dynasty. Therefore, he spent very little time with his father and missed him a lot. His filial piety policy reflected his feelings about his father. During his rule of the country, he rewarded many people who conducted filial piety, although he only ruled the country for 3 years. Yeongwol also contains a nationally known place, called Gossi Cave. During Japanese rule, Go brothers and their families fought against the Japanese army and took refuge in this cave. These two unrelated stories have caused Yeongwol to be known asa county of filial piety and patriotism. This county even holds festivals on filial piety and patriotism. The present study discussed the historical and ideological characteristics of Yeongwol that caused this county to become a famous place for filial piety and patriotism.
한국어
효와 충은 5백년 이상 조선왕조의 수명을 지탱한 원동력이다. 가정에서의 사랑과 공경이 나라에 대한 충으로 연결되면서 나라의 질서가 확립되었다. 때로는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효와 충을 실천하였다. 부모를 위한 헌신, 봉사, 희생이 효라면 그것이 확장하여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충이라 했다. 여기서는 단종과 그가 유배 떠났던 영월지역을 통해 이를 알아보았다. 조선초 왕조의 기틀을 다지고 문화전성기를 구가한 군주로 세종대왕을 말한다면, 그 손자 단종은 불운한 임금이었다. 숙부의 왕위 강탈로 한순간 임금의 자리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유배와 사약까지 받는 역적의 신세가 되었다. 유배지 영월을 단종 애사(哀史)로 자리매김한 사유다. 영월의 또 다른 명물 고씨동굴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단종과 고씨동굴, 모두 효와 충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어린 단종은 대단한 효자로서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자신이 못다한 효행을 적극적인 효행자 포상정책으로 당대 효자들을 기리었다. 고씨동굴은 의병출신으로 효자이자 충신이었던 고씨 형제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단종의 무덤 장릉과 고씨동굴은 영월의 명소로서 비록 시대를 달리하지만, 지역의 문화 이미지를 효와 충으로 특성화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이런 효와 충을 기반으로 하는 영월지역은 이를 축제로 기념한다. 이 논문에서는 효충을 기리는 영월지역의 특성을 단종의 효행장려정책과 영월출신 효행자를 통해 살펴보려고 했다. 이를 위해 왕조실록은 주요한 자료가 되었다. 오늘날 효와 충을 지역문화제로 기리는데 따른 이론적, 역사적, 사상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다.

목차

<요약>
 1. 들어가는 말
 2. 단종의 슬픈 역사와 그 후
 3. 단종시대 효행자 포상과 효문화 장려책
  (1) 부친 문종의 효행사업을 계승한 효자 단종
  (2) 효행 사례와 포상제도
 4. 영월이 낳은 효충문화
  (1) 실록에 기록된 효자
  (2) 지방지에 기록된 효자와 충신
 5. 나오는 말
 <참고문헌>
 

키워드

효충 효자비 단종 왕조실록 영월 Filial piety patriotism Dan-Jong Yeongwol

저자

  • 김덕균 [ Kim Duk-kyun | 성산효대학원대학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효학회 [The Korean Hyo Studies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기타인문학
  • 소개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인 효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이를 보편화시켜 윤리적으로 용이하게 실천될 수 있는 보편적 덕목으로 개발시키는 데에 있다.

간행물

  • 간행물명
    효학연구 [Journal of Korean Hyo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253X
  • 수록기간
    2004~2025
  • 등재여부
    KCI 등재후보
  • 십진분류
    KDC 192 DDC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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