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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국전쟁 전후(前後) 시기의 부랴트인 국민정체성 - 부랴트인 구술생애사 자료를 기반으로
National Identity of the Buryats Around the Great Patriotic War - Based on oral life history of the Bury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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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바로가기
  • 간행물
    한국시베리아연구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19집 제1호 (2015.05)바로가기
  • 페이지
    pp.103-147
  • 저자
    전봉수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48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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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discusses national identity of the Buryats around the Great Patriotic War within a historical anthropological perspective using oral life history. This study reviews the following two topics: first, the relationship the purge campaign of the Buryats by Stalin and Soviets national identity; second, the effects of experiences and memories during the Great Patriotic War on the Soviets national identity of the Buryats. Experiences of the purge campaign of the Buryats by Stalin and the collective memory of the Great Patriotic War influenced the formation and reinforcement through the categorization process. In the process, the Soviet government was used the collective memory as political resources for political purposes.
한국어
본고는 부랴트 공화국에서 조사한 부랴트인 구술생애사 자료를 기반으로 소련의 대조국전쟁 전후(前後) 시기 부랴트인의 국민정체성에 관해 논의하 고 있다. 1929년부터 시작된 스탈린의 반 부랴트 캠페인은 부랴트인이 ‘민 족’을 버리고 ‘국가’를 강제적으로 선택하게 함으로 일국사회주의 노선에서 두 집단정체성이 경합의 대상이 되지 못함을 강조하였다. 이 시기에 대다수 의 부랴트인은 소련 내부의 타자이자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인 과 자신들을 명확히 구별해냄으로 자신들의 민족정체성을 드러냈지만, 동 시에 이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련인 국민정체성도 확립되어 갔다. 대조국전쟁 시기 대부분의 젊은 부랴트인이 징병되어 희생되고, 후방에 서도 어려움이 지속되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러시아인 대 부랴트인’이라 는 민족개념의 이분법적 대항공식이 사라지는 대신, 국가 개념을 기준으 로 하는 ‘외부의 타자’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소비에 트 군대는 어느새 ‘우리 소비에트 군대’가 되었고 전쟁의 승리는 ‘우리 소련 의 승리’가 되었다. 대조국전쟁에 대한 부랴트인의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 럽게 부랴트인의 소련인 국민정체성이 강화되는 정치적 자원이 되었다. 1930년대에 주도적으로 부랴트인 숙청을 지휘했던 스탈린은 전쟁 이전 까지 부랴트인에 의해 ‘나쁜 사람’으로 간주되었으나, 대조국전쟁 승리 이후 그는 부랴트인 사이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스탈 린 주도의 ‘전쟁 승리’는 집단 기억의 재생산을 위한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 되면서 부랴트인 국민정체성의 확립과 강화에 영향을 주었다. 전쟁 후 소련은 참전용사에 대한 특별대우, 학생들의 소련 국가 외우기, 지역에서 의 주기적인 공산당 컨퍼런스 개최, 대조국전쟁 추모행사, 기숙학교 운영 등을 부랴트인 국민정체성 재생산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소련 외부의 타자로 간주된 독일일 및 일본인 전쟁 포로를 직접 경험한 일부 부랴트인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집단을 범주화하는 과정 에서 ‘민족’ 보다는 소련이라는 ‘국가’를 우선시하였다. 전쟁을 통해 경험 한 포로와의 사회적 접촉과 적국(敵國)의 상품 사용을 통해 타자와의 경계 는 더욱 명확해졌으며, 타자와의 경계는 자신들이 소련 국민이라는 정체 성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었다. 반면, 리투아니아인과의 접촉은 적국 포로 와의 ‘구별 짓기’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부랴트인은 소련이라는 ‘국가’를 기준으로 리투아니아인을 자신들과 같은 소련인으로 구분하였다. 부랴트인의 이런 범주화는 ‘민족’이 아닌 ‘국가’를 우리와 타자 집단을 구별 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었으며, 소련인 국민정체성 재생산의 메커니즘으 로 사용되었다.

목차

<국문요약>
 I. 머리말
 II. 스탈린의 반 부랴트 캠페인과 소련인 국민정체성
 III. 대조국전쟁과 부랴트인의 소련인 국민정체성
 IV. 맺음말
 <참고문헌>
 

키워드

부랴트인 대조국전쟁 국민정체성 집단기억의 재생산 정치적 자원 The Buryats Great Patriotic War National Identity Reproduction of Collective Memory Political Resources

저자

  • 전봉수 [ JEON, Bong-Su | 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고고문화인류학과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PAICHAI UNIVERSITY KOREAN-SIBERIAN CENTER]
  • 설립연도
    1996
  • 분야
    사회과학>기타사회과학
  • 소개
    한국-시베리아 센터는 1996년 8월에 체결된 배재대-이르쿠츠크국립대 자매결연 협정과 상호 협력에 관한 협정을 기반으로 양 대학에 공히 개설된 교육 및 연구 목적의 기관으로 한국과 러시아, 특히 동시베리아 지역에서의 교육, 과학,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속적인 상호 협력과 이해관계 증진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국시베리아연구 [SIBERIAN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975-0145
  • 수록기간
    1996~2020
  • 십진분류
    KDC 309 DDC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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