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ring the 1910s, the American film industry increasingly utilized racism for economic purposes. This film -making which had been criticized by middleclass people for fostering class feelings became a method to facilitate class reconciliation among whites. Especially, the 1915 film, The Cheat, reflected on the disappearance of the image of Asians as a middling sort in the evolutionary ladder of civilization and integrated Asian men who were stigmatized as rapists into the racial hierarchies based on a black/white binary. However, The Cheat did not suggest that racial relations were the most basic of social hierarchies at that time. The Cheat reflected class differences, the toppling gender order, and even the cultural struggle within the middle classes. Furthermore, it demonstrated that racial hierarchies and gender hierarchies strengthened each other. Racial hierarchies policed the sexual boundaries and enforced the view that white women need to internalize purity and domesticity for their own safety from racial Other’s sexual threats and to accept traditional gender roles to regain their whiteness. However, sexual boundaries established between the races also complicated the white woman’s social position. White men harshly punished white women for violating these sexual boundaries, while sometimes they letting their own masculinized racial counterparts cross the same boundaries partly to share a certain level of patriarchal power.
한국어
1910년대 미국의 영화 산업은 탈계급적 정서인 인종주의를 영화 소재로 즐겨 이용하고 있었다. 1915년 영화 「치트」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나듯이 백인 주류 사회가 가진 아시아인의 전형성은 진화론에 의거한 중층적 인종위계 속의 중간자적 존재이자 반문명적 유색인종이라는 양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는 인종적 전형성이 한 인종의 인종 위계 속에서의 지위의 유동성을 반영하면서 변화한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치트」는 당대 미국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 모순이 인종 관계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아니다. 영화 속에는 계급 갈등, 젠더 갈등, 중간계급 내부의 문화적 갈등이 중첩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아가 「치트」는 인종 위계와 젠더 위계가 상호영향을 미치며 서로를 강화하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치트」에서 드러나는 인종 간 성 경계에 대한 백인 가부장 사회의 집착은 백인여성을 지배 인종의 일원으로 격상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백인 여성을 열등한 사회적 지위에 위치시키기도 하는 양면적 결과를 낳는다. 특히 백인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가지는 모순성은 백인 여성이 성적 경계를 넘는 것이 철저히 금지된 것과 달리, 백인 여성에 대한 성적 위협으로 규정되면서 부분적인 남성성을 획득한 유색인종 남성이 지속적으로 성 경계를 교란하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가부장 사회의 특권 일부를 향유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잘 드러나게 된다.
목차
1. 서문 2. 성적 위협으로서의 아시아 남성과 인종 환원주의 그리고 백인 가부장제의 공고화 3. 인종 질서와 젠더 질서의 상호 영향과 불안정한 백인성의 구성 4. 결론
문화사학회 [The Korean Workshop for the History of Culture]
설립연도
2000
분야
인문학>역사학
소개
한국의 서양사학계는 새로운 학풍을 도입하고 실험하며 우리의 역사학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오늘날 서양사학계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는 선배들의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에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그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에도 인식을 같이 한다. 그 요구는 여러 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첫 번째는 서양사학 내부에서 솟구치는 추동력이다. 두 번째는 인접 학문 분야와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필요성이다. 역사학 내부에서도 한국사나 동양사와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거니와,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 이룬 결실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 다른 학문 영역에서 역사학에 침투하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세 번째는 일반 대중이 서양사에 대해 느끼는 갈증에 연유한다. 우리의 서양사학이 많은 업적을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대중들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학자들만을 위한 학문의 장을 열어왔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여러 목표들을 수렴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우리는 문화사라는 대안을 상정한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사는 역사학의 특정 분야로서 다른 분야를 배제시키는 개념의 문화사가 아니다. 그것은 침전된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여과 장치이며 역사에 스며든 사람들의 생각을 되살리도록 만들어주는 재생 장치이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방식이지 역사의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정하는 문화사는 다양한 역사가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우리의 시도는 한 마디로 학문적 연대감을 갖는 학문 공동체를 만들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서양사라는 자기모순적인 명제를 넘어서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기극복의 도전이다. 이런 논지가 암시하는 바, 우리 역시 언제 누군가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