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ical investigations employing collective memory require a epistemologicalreflection on the complex dynamics between memory and countermemory. All too often, the concept of memory loses its analytical vigor orremains a tautology with “history”. In this vein, the concept of memoryhas to be coupled with that of counter-memory. Counter-memory canbe understood both as social and sociological reality that goes againstgrain of the socially dominant narrative(s); and as a performative categorythat constantly appropriates the reservoir of memory within the sociallydominant narrative(s). This article utilizes both definitions, surveying avariety of appropriation of the memory of the First World War and criticallyexamining the mutiny of 1917. The First World War narratives have evolved,chronologically, from heroic to revisionist and finally to the internationallycooperative one. The heroic narrative privileges the revitalization ofmasculinity, while the revisionist one emphasizes the everyday violence andthe international cooperation one focuses on European universality. Eachnarrative thus reconstructed the memory of the War, constantly performingcounter-memory. It is not a simple fabrication but an ideological apparatusthat produces a network of meanings — both mnemonic and historical. The mutiny of 1917 is important because it implies contradictory meanings that can never be fully appropriated. The mutineers cannot be considered as passive agent rehashing existing ideology; they constantly appropriated ideologies and political positions out of their initial context. It may not be possible to restore their original memory but it is possible to exhibit its complicated contexts and project them multi-directio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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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기억을 통한 역사 연구는 기억과 반-기억 사이의 복잡한 동학에 대한 인식론적반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집단기억이 개념의 엄밀성을 잃고 오용되거나 ‘역사’와 구분되지 않는 동어 반복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반-기억의개념은 기억의 개념만큼 중요할 수 있다. 반-기억은 대항기억이라는 사회적 실체로도, 기억을 지배적 서사(들)에 편입시키는 일종의 행위 범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논문은 반-기억에 대한 양가적인 정의를 모두 사용하여 프랑스에서의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다양한 기억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특히 1917년 군사반란을 분석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은 시대적인 순서에 따라 영웅적 서사, 수정주의 서사, 국제 협력의 서사의 단계를 거치며 형성되어 왔다. 영웅적 서사는 보불전쟁의 복수와남성성의 회복을, 수정주의 서사는 폭력의 일상화라는 관점을, 또 국제 협력의 서사는 유럽적인 보편성의 강조를 각각의 서브텍스트로 삼았다. 따라서 각각의 서사는제1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기억-하기와 망각-하기를 통해 재구성해 왔으며, 이는 행위로서의 반-기억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행위로서의 반-기억은 단순한 왜곡이 아니라 의미망을 형성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기제가 된다. 1917년의 군사반란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서사의 틀에 포섭될 수 없는 모순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서사들은다양한 방식으로 이 사건의 의미를 구성해 왔다. 하지만 이 반란자들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행위자가 아니라 대단히 복잡한 방식으로 얽힌 정치적 입장을 보여 준다. 이들의 기억을 ‘온전히’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들의 기억이 갖는 복잡한 맥락을 드러내며 다방향으로 기억을 방사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목차
1. 서론을 대신하여: 기억의 인식론적 반성을 위하여 2. 중첩된 기억: 프랑스의 제1차 세계대전 3. “우리는 참호로 가지 않을 것이다”: 1917년 군사반란 4. 결론을 대신하여: 다방향 기억의 가능성
키워드
기억반-기억다방향 기억제1차 세계대전1917년 군사반란MemoryCounter-MemoryMulti-Directional MemoryWorld War IMutiny of 1917
문화사학회 [The Korean Workshop for the History of Culture]
설립연도
2000
분야
인문학>역사학
소개
한국의 서양사학계는 새로운 학풍을 도입하고 실험하며 우리의 역사학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오늘날 서양사학계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는 선배들의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에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그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에도 인식을 같이 한다. 그 요구는 여러 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첫 번째는 서양사학 내부에서 솟구치는 추동력이다. 두 번째는 인접 학문 분야와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필요성이다. 역사학 내부에서도 한국사나 동양사와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거니와,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 이룬 결실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 다른 학문 영역에서 역사학에 침투하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세 번째는 일반 대중이 서양사에 대해 느끼는 갈증에 연유한다. 우리의 서양사학이 많은 업적을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대중들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학자들만을 위한 학문의 장을 열어왔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여러 목표들을 수렴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우리는 문화사라는 대안을 상정한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사는 역사학의 특정 분야로서 다른 분야를 배제시키는 개념의 문화사가 아니다. 그것은 침전된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여과 장치이며 역사에 스며든 사람들의 생각을 되살리도록 만들어주는 재생 장치이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방식이지 역사의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정하는 문화사는 다양한 역사가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우리의 시도는 한 마디로 학문적 연대감을 갖는 학문 공동체를 만들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서양사라는 자기모순적인 명제를 넘어서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기극복의 도전이다. 이런 논지가 암시하는 바, 우리 역시 언제 누군가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