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urpose of this paper is what lesbian was in 18th century England and who they are. Especially I tried to prove out the reason why the Bluestocking was regarded as a the lesbian. So the main content was what kind of relationship which the Bluestocking had done. To do this, I inspected their letters in the concrete. Of Course, It was knotty problem of how we might prove the intellects of the age was a lesbian or not. But this is not my subject matter and their relations was such that I can’t prove. Instead of using the word ‘lesbian’, there was the ‘Romantic Friendship’ in the 18th century. It was the relation of women who prefer the friendship than love, a woman’s bond than a conjugal love. At that time, there was no punishment for ‘lesbian’ couple that means in modern sense of sexual abuse. Most of the Bluestocking who don’t marry lived together with sharing a house, even they had equal rights of property and inheritance. If they loved each together and exchanged love letters, they were not lesbian, if ever, in modern meanings. I come to a conclusion that they had chosen the cohabitation as an alternative life which would be known as ‘Boston Marriage’. The society and the intellectuals in 18th century England thought the women’s, of course not men’s, relation with romantic friendship was not harmful and even sinful. You will know the reason why. Therefore, I have a hypothesis that they who enjoy the relation of Romantic Friendship might be a progenitor of the ‘Boston Marriage’ in 19th century America.
한국어
이 글은 18세기 영국에서 레즈비언의 실체, 그리고 그들에 대한 지식인 여성들을 비롯한 일부의 시각을 다룬다. 또한 블루스타킹 서클로 알려진 지식인 여성들은 그 시대 ‘레즈비언’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우선 밝혀 두는 것은 레즈비언은 19세기 말 특정 관계의 여성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단어였으며, 18세기에는 ‘로맨틱 우정’이라는 용어로 여성의 특별한(?) 관계를 용인했고, 설사 애정 행각이 있다고 해도 사회적 처벌의 대상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블루스타킹을 비롯한 여성들의 로맨틱 우정이라는 관계가 특별히 사회의 관심을 끈 것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여성 연대 기구를 설립하고자 한 노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편지와 저작 들에서 공공연히 남성 혐오와 결혼 혐오를 드러냈고 여성들끼리의 진정한 우정을 강조하였다. 그중엔 물론 지나친 여성 우정에 집착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성적 정숙을 모토로 내걸었고 귀족이나 국교도의 딸들로서 현재적 의미의 레즈비언 관계에 대해서도 혐오 이상의 감정을 지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블루스타킹의 여성 연대에 대한 소망이 그들끼리의 동거로 구체화되었고, 이들의 동거는 19세기 말 여성들이 성적 관계가 없으면서 동거했던 ‘보스턴 결혼’의 전례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여성의 의무라는 사회적 압력을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결혼의 대안으로서의 여성 연대, 즉 보스턴 결혼을 스스로 택한 지식인 여성들이었다고 생각된다.
목차
1. 들어가며 2. ‘로맨틱’ 우정 3. 여성의 동거: ‘레즈비언’? 4. 여성 연대와 ‘보스턴 결혼’ 5. 나가며
문화사학회 [The Korean Workshop for the History of Culture]
설립연도
2000
분야
인문학>역사학
소개
한국의 서양사학계는 새로운 학풍을 도입하고 실험하며 우리의 역사학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오늘날 서양사학계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는 선배들의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에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그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에도 인식을 같이 한다. 그 요구는 여러 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첫 번째는 서양사학 내부에서 솟구치는 추동력이다. 두 번째는 인접 학문 분야와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필요성이다. 역사학 내부에서도 한국사나 동양사와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거니와,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 이룬 결실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 다른 학문 영역에서 역사학에 침투하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세 번째는 일반 대중이 서양사에 대해 느끼는 갈증에 연유한다. 우리의 서양사학이 많은 업적을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대중들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학자들만을 위한 학문의 장을 열어왔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여러 목표들을 수렴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우리는 문화사라는 대안을 상정한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사는 역사학의 특정 분야로서 다른 분야를 배제시키는 개념의 문화사가 아니다. 그것은 침전된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여과 장치이며 역사에 스며든 사람들의 생각을 되살리도록 만들어주는 재생 장치이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방식이지 역사의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정하는 문화사는 다양한 역사가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우리의 시도는 한 마디로 학문적 연대감을 갖는 학문 공동체를 만들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서양사라는 자기모순적인 명제를 넘어서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기극복의 도전이다. 이런 논지가 암시하는 바, 우리 역시 언제 누군가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