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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황의 <도산도> - 표암 강세황과 성호 이익이 우정으로 그린 그림 -
The Solidarity of Painting -Kang Sehwang’s Dosan Confucian Academy Painted for Yi Ik in Friendshi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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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아시아고대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아시아고대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7집 (2015.03)바로가기
  • 페이지
    pp.59-89
  • 저자
    이경화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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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1751, Kang Sehwang 姜世晃 (sobriquet, Pyeoam, 1713–1791) painted Dosan-do陶山圖 (the Painting of the Dosan Confucian Academy) for Yi Ik 李瀷 (sobriquet, Seongho, 1681–1763), a leading scholar of Sil’hak (實學), a Confucian social reform movement of the eighteenth-century Joseon period. Dosan-do is a topographical landscape painting representing the Dosan Confucian Academy and its surroundings (located at Andong), commemorating the scholar Yi Hwang 李滉 (sobriquet, Toegye, 1501–1570). Since the first version was painted in 1550 on the orders of King Myeongjong (r.1545–1567), Dosan-do was repeatedly paired with Muyi-do, the painting representing Zhu Xi’s (朱熹, 1130–1200) Wuyi Mountains. For members of Namin (南人), the Southern School of Joseon Neo-Confucianism, Dosan-do and Muyi-do epitomized the pursuit of Toegye’s doctrine of Joseon Neo-Confucianism. It is generally acknowledged that Yi Ik’s commission of Dosan-do from Kang is an affirmation of respect for Yi Hwang as well as for the spiritual genealogy of the pedigree of Namin. Beyond such ideological symbolism of Dosan-do, the paper shed light on the “meeting” between Kang Sehwang, a representative literati painter, and Yi Ik, a prominent scholar of the late eighteenth century. They both lived in Ansan for twenty years and shared their academic interests and artistic experiences. Extant text records, however, do not reveal precisely how they interacted with each other. Although their interaction has been dismissed as unremarkable because of the scarcity of written evidence, we can find obvious traces of an interrelationship in Kang’s Ansan paintings. Kang and Yi shared a particular friendship despite more than thirty years of difference in age as well as differing social status. However, if we focus on the Confucian genealogy of Dosan-do, their relationship would be reduced merely to that of patron and painter or to a token interaction between local scholars. The consequence would be to disregard Kang’s own pictorial strategy and the multifaceted implications of the artistic activities in his life. Therefore, I intend to pay more attention to Kang’s pictorial reinterpretation, and to the context in which he encountered Yi Ik. This approach will highlight the significance of their junction. During his stay at Ansan, spending time with Yi Ik enabled Kang Sehwang to establish his artistic vision, thoughts, and knowledge as an artist and intellectual, and ultimately allowed him to develop his self- conscious art.
한국어
1751년, 안산에 머물던 姜世晃(1713~1791)은 대학자 星湖 李瀷(1681~1763)을 위해 <陶山圖>를 제작하였다. <도산도>는 退溪 李滉(1501~1570)의 도산서원과 그 주변의 풍광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이 처음 그려진 명 종대 이래 <도산도>는 퇴계로부터 시작된 남인의 학문적 宗旨를 상징하는 그림으로서 주자의 강학처를 그린 <武夷圖>와 더불어 남인 문사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강세황이 성호의 요청으로 제작한 <도산 도>는 이 그림의 보편적 맥락에서 성호의 퇴계에 대한 존경심과 학문적 계승정신을 기탁한 그림이었다. 도산도의 일반적인 도학적 상징성을 넘어 강세황의 <도산도>를 통해 조명해야 하는 부분은 ‘實學’을 대표하 는 학자 성호와, 문화예술 부분에서 역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강세황 간의 ‘안산’에서 일어난 ‘만남’ 이다. 이들의 만남이 중요한 까닭은 학문과 예술, 두 분야의 대표적인 인물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머 물며 시절을 공유하는 경우란 역사에서 다시 찾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 안 한 지역에 동거하며 학문과 문예로서 교유했다. 그러나 이 만남은 그들이 남긴 문자 속에서 쉽게 실체를 드 러내지 않는다. 비록 문헌에는 이 관계가 도드라지지 않지만, 강세황이 안산에서 제작한 회화 작품은 두 사람 간의 특별한 관계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30여년이 넘는 나이차, 서로 다른 사회적 위상을 뛰어넘어 이루 어진 이 관계에는 단순히 지역적 근접성으로, 문인집단 내의 일상적인 만남으로서, 혹은 그림의 주문자와 화 가로서의 관계로 축소할 수 없는 성질이 있다. <도산도>가 제작된 날은 1751년 10월 15일이다. 바로 성호의 생일을 3일 앞 둔 날이었다. 이 시점에 제작한 < 도산도>는 성호의 71세 생일을 맞이하여 그의 일생과 학문을 기념하기 위한 그림이었다. 동시에 같은 해 아들 李孟休(1713~1751)의 죽음으로 상심한 그를 위로하는 그림이기도 했다. 강세황은 이 그림을 제작하며 관습적 인 화법으로 그려지던 <도산도>를 문인화의 방식으로 새롭게 그려냈으며, 원근법을 적용하여 화면을 재구성 했다. 그림의 마지막에 적은 화기에는 성호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다. 문인화가의 손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 도산도>에는 성호의 예술적 취미와 도산서원을 방문한 기억이 반영되어 있다. 강세황이 성호를 위해 <도산도 >를 그리고자 한 바탕에는 성호의 삶과 학문에 대한 특별한 이해와 우정이 있었다. 강세황이 안산에 머물며 성호와 교유하던 시기는 문인화가로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성숙시켜 나간 시기였다. 이 논문은 안산을 배경으로 맺어진 인간적 연대가 강세황의 예술세계를 형성한 한 가지 요소이며, 그 관계의 이면에서 역사적, 개인적 경험이 작용하고 있음에 대해 논의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남인의 도맥을 상징하는 도산도
 Ⅲ. 강세황이 문인화로 그린 도산도
 Ⅳ. 실학의 대학자와 문인화가의 만남
 Ⅴ. 결론: 불우한 시절의 우정과 연대
 참고문헌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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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경화 [ Lee, Kyung-hwa |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아시아고대학회 [The Association Of East Asian Ancient Studies]
  • 설립연도
    1999
  • 분야
    인문학>기타인문학
  • 소개
    본 학회는 동아시아권역의 고대의 역사와 문화, 언어와 문학, 종교와 철학, 민속과 사회, 고고학 등에 관한 고대학 관련분야의 학문을 학제적 국제적인 협력과 유대를 통해 연구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연구의 질을 향상시키며,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학문발전과 문화교류 및 학자, 연구자, 회원 상호간의 유대와 국제적 친선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를 위하여 본 학회는 동아시아고대학에 관한 연구발표회, 학술강연회, 강독회, 학술답사, 도서출판, 학회지 발행 등의 사업을 기획하여 집행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아시아고대학 [DONG ASIA KODAEHAK ; The East Asian Ancient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229-8298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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