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부터 중국 요동지역에서 흥기한 여러 부족(민족)들은 중국대륙을 지배 하고자 끝임 없이 군사를 일으켰다. 그들은 물리적인 힘으로 상대방을 정복하고 강역을 확대하여 나갔다. 이와 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란 속에서 수많은 백성 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전쟁‘포로’로 취급되어 무참히 학살되거나 강제로 정복자들에게 끌려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와 발해의 유민들이 그 대 표적인 사례이다. 중국의 요․금․원 시기에도 한반도내의 적지 않은 고려인들이 요동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이주형태도 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대부 분이 전쟁에 의한 강제적 이주였다. 그리하여 당시 요동이나 요서일대에는 새롭 게 고려인 부락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말명초 시기에도 수많은 고려인(조선 인) 유민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 시기 조선인들이 요동으로의 대량 이 주는 전쟁 외에도 명나라의 세금 및 병역에 대한 우대정책과, 요동 東八站일대의 비옥한 토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요동일대로 이주하였던 고려인이나 조선인들은 혹자는 한반도로 돌아가고 혹자는 당지에 남아 여진과 한 족을 비롯한 기타 민족들과 잡거하면서 점차 기타 민족에게 동화되어 자취를 감 추었다. 1616년 여진족의 누르하치는 赫圖阿拉에 후금을 세운 후 팔기제도를 바탕으 로 신속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전 요동지역을 장악하였다. 한편 이 시기 조선에 서는 “인조반정”에 의해 대권을 잡은 서인 “척화파”들이 공개적으로 “親明排金”의 외교정책을 펼쳤다. 결과 1627년과 1936년 후금은 두 차례에 걸쳐 “친명배금” 을 고집하는 조선을 침략하였다. 그들은 군인은 물론이고 수십만에 달하는 무고한 조선인 백성들까지도 이른 바 전쟁“포로”로 취급하면서 강제적으로 만주로 끌 고 갔다. 1645년 10년간에 걸쳐 진행된 조선인 포로속환은 조선세자와 봉림대 군의 환국으로 종결되었으나 청조의 소극적인 송환정책으로 말미암아 송환된 인 원수는 전체 “포로”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두 차례의 전쟁에서 후금군에 잡혀 간 조선인 포로들 중 일부는 팔기군에 편입되었으나 대부분은 “전리품”으로 취급 되어 청조의 왕공귀족과 팔기군 관병의 家奴나 농장 농노(포이)로 전락되었다. 1644년 청조는 북경으로 천도한 후 팔기병은 물론이고 만주지역의 모든 백성들 까지도 전부 관내로 이동시켰다. 그리하여 만주팔기에 편입된 조선인이나 각 농 장에 팔려가 포이로 전락한 조선인들 모두가 팔기병과 주인을 따라 관내로 들어 갔다. 그후 청조가 중국대륙을 통일한 후 일부 조선인 포이들은 청조의 왕공귀족 을 따라 재차 만주로 이주하여 대대손손 농업에 종사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82년 중국에서 실행된 제3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서 河北省 靑龍縣의 八家 子鄕 塔溝村과 大杖子鄕 孟家窩鋪, 平泉縣의 七溝鎭 朴杖子村, 그리고 遼寧省 蓋 縣의 陳屯鄕 朴家溝와 本溪縣 山城子鄕 朴堡, 久才, 化皮 등 村의 천여 명의 “漢 族”들이 자신들은 원래 고려의 후손들이었으므로 본 민족의 족적을 한족에서 조 선족으로 회복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당지 정부에서는 충분한 역사고찰 과 사회조사를 거친 후 상술한 박씨촌 “한족”주민들을 조선족으로 족적을 회복해 주었다. 상술한 박씨들은 이주초기 신분이 비록 비천하였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공간에서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기들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지켜나갈 수 있 는 기반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비록 그들은 신분이 낮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 다른 민족과 더불어 생활하는 가운데서 본 민족의 문화를 제대로 전승할 수 없었 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박씨 후예들은 360여년이 지 난 오늘까지도 화석처럼 남아서 중국지역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시점을 증언해주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Institute for the Future Korea-China Relations]
설립연도
2012
분야
사회과학>정치외교학
소개
본 연구소는 전문화되고 특화된 중국관련 연구소 구성의 필요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지역학으로서의 중국학과 한국학 제 분야의 학제 간 연구 수행을 통해 한국학과 중국학의 선도적 연구기관으로서 위상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에서 의미를 갖는 중국학과 중국에서 의미를 갖는 한국학으로 학문적 지평을 확장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