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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지리산권 영·호남 지식인의 향촌교화 활동

조선후기 晉州에서 실시된 洞約의 분석
Analysis of Dongyak (洞約) executed in Jinju (晉州) in the Late Yi-Dynasty
조선후기 진주에서 실시된 동약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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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남도문화연구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27권 (2014.12)바로가기
  • 페이지
    pp.37-70
  • 저자
    김준형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36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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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re were quite a few cases of the native tribes (士族) using dongyak (洞約). In addition hyangyak (鄕約) was used in the whole district under the leadership of the chief of that time in Jinju. 13 cases have been discovered. The enforcement time of dongyak varied. Myeonri (面里), which used dongyak, was a mostly stable basis for native tribes. However, the family which took the leadership of dongyak chang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various families participated. There were, however, instances in which certain descendants of some families lead together. However, after the 17th century, while Confucian norms were proliferated and the family system changed, influential families occupied dominant positions in each village. However, there were many cases in which non-native tribes (in addition to native tribes) participated in dongyak. In these cases, the inner organization was divided into sangdong (上洞) and hadong (下洞). Native tribes and non-native tribes were strictly differentiated in respect of their positions. This differentiation weakened along with social change but there there were many cases in which the differentiation was maintained. Sometimes only native tribes participated in dongyak. There were various regulations of dongyak according to dongyak of Jinju. Every dongyak was not completely accepted in Jinju, which was influenced by Toegye (退溪)'s hyangyak. Dongyak in Jinju was remarkable as it paid attention to the operation of study rooms (書室) and the education of the children of the members.
한국어
진주 내에서는 역대 수령들이 주도하여 고을 전체에 鄕約을 실시하는 경우 이외에, 士族들이 마을별로 독자적 으로 洞約을 실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만 해도 13건이나 된다. 동약의 실시시기는 다양하였다. 동약이 실시된 面里는 대부분 사족들의 기반이 안정된 곳이었지만, 동약을 주 도하는 가문이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임진왜란 무렵에는 여러 성씨가 참여하되, 특정 성씨의 내․외손이 같이 주도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유교적 규범이 확산되고 친족제도가 변하면서, 각 마을에서 유 력한 특정 성씨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동약에는 사족층만 참여하지 않고, 비사족층들이 참여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 경우 내부 조직을 上洞․ 下洞으로 구분하고, 사족과 비사족층을 신분적으로 엄격하게 차별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이런 차별은 이후 사회변화에 따라 약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차별이 유지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사족층만 동약에 참 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진주의 동약마다 동규 내용도 다양하다. 退溪의 향약이 영향을 미치던 진주에서도 그것이 각 동약에 모두 수 용된 것은 아니었다. 진주에서의 동약은 書室 운영과 구성원 자제의 교육에 관심을 쏟는 점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목차

I. 머리말
 II. 진주에서 향약이 실시된 예
 III. 각 동약들의 비교
  1. 동약이 실시된 촌락
  2. 동약 실시주체
  3. 동규의 내용
  4. 자제 교육과 서실 운영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고을 내 동약의 다양성 동약 실시시기의 다양성. 동약 주체의 변화 동규의 다양성 Variety of Dongyak (洞約)s in a district Variety of enforcement time of dongyak Change of the leaders of dongyak Variety of the regulations of dongyak

저자

  • 김준형 [ Kim, Junhyeong | 경상대학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The Jirisan Region Culture Research Inatitute, Sunchon National University]
  • 설립연도
    1986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호남지방 및 남해안 지역의 향토문화를 조사ㆍ연구함으로써 지방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도모하며 민족 문화의 창달에 이바지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수행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남도문화연구 [The Centre for Namdo Culture]
  • 간기
    연3회
  • pISSN
    1975-826X
  • 수록기간
    199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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